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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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21:30

두 명의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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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잠시 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는 날씨가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11월 말이지만 이제 완연한 겨울로 진입했나 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은 그리 달갑지 않은 계절입니다.

무엇보다 추위가 많은 것을 얼어붙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떨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따스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길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앞에 여학생 두 명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현 듯 뒤에서 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웬 동양인 한 명이 뒤에 오고 있으니 괜시리 불안함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제가 그리 험악하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뒤를 흘끔흘끔 보는 게 제가 조금 무서웠나 봅니다.

공포 영화나 스릴러 영화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여자 한 명이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여자는 무서워져 발걸음을 재촉하지요.

그러다가 정말 납치가 되면 스릴러 영화가 되고,

그 발걸음의 주인공이 오빠나 가까운 지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냥 드라마 영화가 됩니다.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그런 긴장감이 숨어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두 여학생에겐 제가 낯설고 무서운 사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방향이 같았을 뿐인데

사람의 생각은 두려움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저 그런 일상의 평범함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 만큼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언젠가 레지오 훈화 때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냉동 탑차 안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결국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기막힌 반전은 그 냉동 탑차는 냉동장치가 고장이 나서

냉동고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갇혔던 그 사람은 ‘이제 꼼짝 없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고

결국은 그리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만큼 사람의 섣부른 판단은

굉장히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조금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밤도 아니었는데

두 명의 여학생들에게는 제가 두려운 존재로 생각되어졌을 것입니다.

그걸 제가 어떻게 바꾸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학생들은 결국 자기들의 길을 가고, 저 역시 저의 길을 갔지만

잠시 동안의 그 어색함은 남았습니다.

아마도 동양인으로서는 큰 덩치의 영향 탓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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