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로 살면서 제일로 보람 있는 때는 신부님들마다 다를 테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오랜만에 고해성사를 보러 오실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의 감격스러움은 자주 느끼는 감정이지만

오래토록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있다가

기회가 닿아 고해성사를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뿌듯함을 느낍니다.

기차로 2시간은 달려야만 올 수 있는 거리에 계신 분께서

오늘 고해성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계시는 곳은 작은 동네여서 주로 독일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특별히 날을 정해 고해성사를 하러 오신 것입니다.

가끔씩 성령묵상회나 레지오 교육 등을 하러 갈 때,

고해성사 하신 지 10년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해마다 고해성사를 규칙적으로 빠지지 않고 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 분들이 보다 더 신부들에게는 소중한 분들이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성사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가

문득 결심을 하고 새로운 각오로 고해성사를 하시러 오시는 분들도 소중합니다.

이건 고해성사의 비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분들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튼 오신 분은 평소에도 규칙적으로 독일성당에 나가시면서

독일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하시지만

한국말로도 고해성사를 하시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먼 길을 오신 것입니다.

신부님들은 다른 일은 몰라도 성사를 하겠다는 신자들의 요청을

웬만해선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성사를 주는 일이야말로 신부들에게는 제일 우선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분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그분이 평소에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반을 꾸준히 다녔고

세례를 받기 위한 원의가 있다면

그 교통사고가 새벽에 일어났든 한밤중에 일어났든

신부들은 세례성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면 가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이고,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성사를 요청 받는 신부들의 마음가짐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드물지만 신부님들 중에는

한밤중에 선종하시게 되는 신자분들을 위해

병자성사를 주기 위해 가시는 일은 간혹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병자성사가 곧 종부성사가 될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성사 요청이 있으면

다른 일은 제쳐두고서라도 그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게 신부들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사거행을 통해

신부들은 특별한 느낌을 얻을 수 있기도 하지요.

어찌 되었건 먼 길을 오셨던 그분은 고해성사를 하신 뒤 커피 한 잔을 하고,

그 뒤에는 다시 되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신앙생활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