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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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 그들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3)

복자 김대건, 전교기구의 ‘본토인 신학생 후원 안내’ 모델이 되다

 

 

 

앞면 : 김대건 신부 초상화 아래 ‘복자 김 한국의 순교 사제’ 그리고 ‘본토인 신학생을 위한 기도’라고 되어 있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교황청 전교기구 베드로 사도회의 프랑스 파리와 리옹 지부에서 발행한 「본토인(邦人) 신학생을 위한 기도문」이다. 앞면은 복자 김대건 신부의 초상이고 뒷면은 기도문과 후원회원 관련 내용이다.

 

복자 비오 9세 교황은 1857년 9월 24일 김대건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했고, 비오 11세 교황은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김대건 신부를 한국의 순교자 78위와 함께 시복했다. 시복식에 참석한 한국인은 한기근(바오로, 1867~1939) 신부 외에 장면(1899~1966)과 장발(1901~2001) 세 명이었다. 시복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기근 신부는 로마 여행기를 썼고 장발은 복자화를 그렸다.

 

장발은 김대건 신부 초상을 두 차례 그렸는데 첫 초상화는 얼굴을 중심으로 그렸고, 두 번째는 전신을 그렸다. 장발 스스로 후자에 대해 “모든 형체를 가성적으로 직선화하였고, 성선(聖線)을 다시 균제(均齊)의 배열법으로 처리한 결과 고요로운 평화가 최대한도로 달성된 그림”이라고 평했다.(「가톨릭청년」 1936년 2권 2호) 김대건 신부의 수직적 자세와 수평적 배경이 화폭에 십자가를 구성함으로써 종교화로서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본 것이다. 장발이 그린 김대건 신부의 초상은 이후 작은 상본으로 제작되어 선교사들에 의해 전 세계로 보내졌고, 각 지역에서 한국 교회와 한국의 첫 사제 순교자를 소개하는 자료에 활용되었다.

 

이 기도문에 사용된 그림은 모사본이다. 장발이 그린 김대건 신부 초상은 여러 차례 모사되었다. 옛 용산예수성심신학교 성당(현 원효로 성심 수녀회 성당) 모사본은 캔버스에 유채로, 가톨릭전례박물관의 모사본은 독특하게 함석판에 그렸다. 현재 원본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있다. 원본은 화면의 아치형 구조에 “나를 위하야 무궁셰가 곳 시작하리니 그대들도 사후 진복을 누리려 하거든 셩교를 봉행하라(위)/ 네가 영원히 탁덕이로다(아래)/ 복자 김 신부 탄생 一八二一년 탁덕승품 一八四五년(오른쪽)/ 참슈치명 一八四六년 로마에셔 시복식 一九二五년(왼쪽)”이라고 적혀 있다.

 

원본과 비교해 보면 기도문에 사용한 그림은 얼굴 모습이 이국적이며 글자 대신에 김대건 신부가 들고 있는 순교자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장식적으로 그려 넣었다. 모사본이지만 보편 교회에, 나아가 세계인에게 ‘한국인 첫 본토인 사제 순교자 김대건 신부’를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더욱이 본토인 성직자와 수도자 양성에 목적을 두고 있는 교황청 산하 전교기구 자료에서 김대건 신부가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더라도 김대건 신부의 신앙과 삶은 보편 교회에서 함께 공감하는 ‘결실이자 기쁨’이었을 것이다.

 

뒷면 : 본토인 신학생을 위한 기도문과 베드로 사도회 후원회원 소개글. 이돈수(가밀로) 소장.

 

 

본토인 신학생을 위한 기도문

“모든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저희에게 당신의 열매를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들이 확신을 가지고 당신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어 당신의 복음이 널리 퍼져 세상에 드러나, 마침내 모든 이가 당신을 참 하느님, 당신과 당신이 보내신 분,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아들, 우리의 주님으로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전교 미사 참조)

 

 

목적

신학교 설립 및 선교지의 본토인 성직자 모집을 위해 기도와 자선으로 돕는다.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업회는 ‘성 아기 예수 데레사의 선교사 장미 나무’를 조직했다. 한 그루의 선교사 장미 나무는 다음과 같은 회원들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

a) 창립 회원 : 한 명의 본토인 신학생 유지에 필요한 총비용을 한 번에 혹은 분할로 기부하는 회원

b) 후원자 회원 : 한 명의 신학생이 공부하는 동안 한 그루의 선교사 장미 나무를 제공하는 후원자 혹은 단체(개인 또는 지역 사회, 교구, 신학교, 기관 등). 즉 연 1200프랑 또는 월 100프랑 후원

c) 열성적인 지지자 회원 : 장미 스무 송이, 즉 연간 120프랑 또는 월 10프랑

d) 일반 준회원 : 장미 한 송이, 즉 연간 최소 6프랑 또는 월 0.5프랑

 

모든 정보는 다음 연락처로 문의하십시오

PARIS, 5, r. Monsieur 7―Ch. postal Paris 618.25

LYON, 12, rue Sala―Ch. postal Lyon 72.71

 

뒷면에는 선교지를 위한 기도문과 후원회 설립 목적 및 후원금액에 따른 회원의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하단에는 후원회 가입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의처인 파리와 리옹의 사도회 주소를 밝히고 있는데 구글 지도로 찾아보면 두 곳 모두 현재도 같은 주소지에 있다.

 

교황청 전교기구 베드로 사도회는 선교 지역의 성직자와 수도자 양성에 영적ㆍ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기구이다. 1889년 나가사키대목구장 쥘 알퐁스 쿠쟁(Jules-Alphonse Cousin, 1842~1911) 주교가 스테파니 비가흐(Stphanie Bigard) 여사와 그녀의 딸 잔 비가흐(Jeanne Bigard) 양에게 사제 지망생인 일본 소년들을 후원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서북부 바스노르망디 칼바도스에 있는 도시 캉(Caen)에 전 세계 현지인 사제 양성을 돕는 베드로 사도회가 세워졌다. 베드로 사도회는 1890년 레오 13세 교황의 인준을 받았고, 1922년 5월 3일에 비오 11세 교황의 공표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기구가 되었으며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24일, 송란희(가밀라,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사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