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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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1 20:13

예수님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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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도전과 유혹이 많고 세상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또 멈추어 자신을 대면하고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중심을 잃고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며

피상적으로 살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 예언자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메시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메시아가 갈릴래아 같은 누추한 동네에서

나올 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과 명예욕에 젖어 참 하느님을 볼 수 없었고

자신들의 사고의 틀과 속화된 힘의 질서 안에

하느님을 가두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사랑 자체로서 우리가 온 몸으로 받아들여

함께 해야 하는 분을 인간의 생각에 가두고

소유의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비극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참된 메시아로 오셨지만

군중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종교제도라는 구조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층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조리한 구조를 깨뜨리며 자신들을 위협하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적대시하여 죽이려 듭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며 그분을 추종한다는 것은

하느님 위에 군림하고 하느님 창조의 선물인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권력에 맞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이신가?

이 질문 앞에 중요한 것은 논리적 정의가 아니라

그분을 내 삶의 으뜸가는 주인이요 절대의 의미로 여기며 살고 있는가 하는

나의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사고나 이기적인 목적에 가둘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논쟁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 드러나는 자애로우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체험되는 것입니다.

이런 논쟁은 모두가 진리에 눈을 뜨고 그것을 받아들여

사랑으로 살아낼 진실한 의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길은 힘들고 외로운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걸어갈 때

십자가를 넘어서는 부활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분명 도전입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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