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로그인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희망과 확신을 필요로 합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커다란 근심을 가지고 지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 여파 그리고 기후 변화와 교회의 상황등 모든 것이 우리 앞에 당면한 과제들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견디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는 사람은 늘 스스로 한 걸음 앞서 나아갈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런 차원에서 “희망이란 끝없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속에서 희망을 위한 강한 동기 부여를 찾습니다.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10장 35절); “희망에 대한 확신을 지니십시오.” (히브리서 3장 6절);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기를비는 것 입니다.” (에페소서 1장 18절)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베드로 1서 3장 15절).

 

 희망을 가지겠다고 결의하는 것은 경솔함과 무관합니다. 또한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삶의 가치를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에 대한 희망과 확신은 현재 우리 삶의 무게들을 견디어 내게 합니다.

 

 최근에 선종하신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의 여러 중요한 문헌들 중 하나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에서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희망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크던 작던 매일 우리를 삶의 길 위에 설 수 있게 지켜주는 희망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더 큰 희망 없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희망은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 희망은 오직 하느님이시며,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싸주시고, 우리 스스로는 해결 할 수 없는 것에는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지금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그 상태 그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어떤 막연한 신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 인간성 그 전체를 끝까지사랑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의 원천이십니다.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1항)

 희망은 결코 편협한 낙관론이나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희망하는 사람은 현 상황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전망을 가진 사람이며, 현실의 어려움에 낙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무엇인지 바라보고 온 힘을 다해 혁신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희망은 불확실성을 양산하는 단절을 뛰어넘습니다” (M. Seewald). 그리하여 희망은 우리를 과거나 과거의 관습,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 묶어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한계 너머를 바라보게 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교회로서 독일과 함부르크 대교구에서 진지하고 실존적인 주제들을 다루기 위해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사실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일부는 이미 시작 되었고, 많은 부분들이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성추문을 비롯한 권력의 오남용, 함께 걸어가는 여정(시노드)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주교 시노드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도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더욱 더 희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수많은 젊은이들이 유럽 떼제 공동체 모임을 위해 우리 함부르크 교구의 Rostock으로 왔습니다. 그들 가운데에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희망의 표징을 함께 살아간다는것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곳에서 우리 교구의 몇몇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기쁩니다. Rostock에 있는 우리 공동체들은 주최자로서 초대된 유럽 떼제공동체 모임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공동체 신자분들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ostock에서의 만남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젊은이들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데려올 수 있는 희망의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는 내적인 삶이며 다른 하나는 내적 연대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강한 내적 삶을 필요로합니다. 내적 삶에 뿌리를 둔 사람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희망의 상징은 그저 대략적인 닻의 외형이 아닙니다. 닻은 깊은 해저 속으로 내려가고 그 바닥에 스스로를 단단히 고정시킵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하느님께 깊이 스스로 고정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Rostock에서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내적인 삶으로부터 기도하는 가운데 비로소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떼제 노래들은 묵상가운데 반복되었고, 깊은 내면안으로 함께 하는 이들을 이끌었습니다. 성경의 몇몇 말씀들이 낭독되었고, 그 말씀들은 깊은 침묵 속에서 마치 광야에서 울려퍼지는 것처럼 우리 가운데 스며들었습니다. 초를 켜거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특별했던 표징들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비슷한 경험을 일 년 전 즈음 우리가 그 달의 첫 수요일에 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두 시간 정도 함께 하는 가운데 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외적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적으로는 더욱 깊이 말입니다.

 

 희망이 자라고 그리하여 우리의 단단한 반석이 될 수 있도록 내적이고 영적인 삶은 중요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필요한 실질적인 몇 발짝을 내딛기 위한 힘과 방향성 그리고 동기를 찾습니다. 우리는 교구내에서 많은 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특별히 저는 문자 그대로 교구의 모든 사제관과 그것을 포함하는 모든 부동산과 관련한 대대적인 개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믿어왔던 형식과 그 장소에 대해서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고 아픈 일임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적지 않은 분들께서 이것이 어떻게 공동체와 함께 살아간다는 차원에서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철거하고 축소해나간다는 생각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때로는 나약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도전의 관점에서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묻고자 합니다. 어떻게 내적인 삶이 자라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힘차게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그 한계를 깨닫기 위해 내적인 삶으로부터 자라나는 희망에 뿌리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내적 삶과 관련하여 추가적으로 피정에서부터, 성서 연수 혹은 다양한 강의까지 다각도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많은 공동체들이 하느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나눔 모임과 성서 공부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주변에 이러한 모임이 없다면 용기 있게 본당에서 기도를 하기 위한 시간을 내거나 신학과 영성 서적을 읽고 나누는 모임을 만들거나 혹은 그 이 외의 어떤 것이든 수행을 통해 그 첫 발을 내딛어 주십시오. 만약 우리가 우리 공동체에서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서 기도를 통해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희망의 징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구 안에서 자발적 봉사이든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방식이든 혹은 양쪽 모두에 해당되든 우리가 시간을 내어 우리의 희망을 서로 이야기하고 또 직접적으로 말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희망의 굳건함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Rostock 떼제 공동체 모임에서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기도 안에서 희망이 표현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함께 여러분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시오!

 우리의 기도와 내적인 세상으로의 도전들로부터 도망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Rostock의 워크숍과 나눔시간에 늘 다시금 어떻게 그들이 스스로 올바름을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연대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지 함께 탐구했습니다. 이 모습은 의욕적으로 보였고, 어떤 참여의 자세로 그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함께하는 우리를 강화해 나가기 위해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이 아니라 어떻게 협력하는 지가 관건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힘으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삶을 채우고 또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정의와 연대를 살아갈 수 있습니까? 이 과제는 단순히 가톨릭 카리타스 사회 복지사업에 유보된 문제는 아닙니다. 이는 우리 각자 모두에게 당면한 과제입니다. 대림시기에 저는 외롭고, 경제적 위기에 처해있는 많은 분들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진지한 자세로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살아내셔야 하는지 읽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큰 어려움들에 시선을 돌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구호물품을 보내주신 것은 참으로 커다란 연대의 표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근처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부끄러움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고립되어 있으면서 여전히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이드신 분들의 외로움에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금기시되는 주제이며 여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가 상승으로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걱정은 가중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우리 가톨릭 교회의 틀을 벗어나 연대를 살아 낼 수 있는 우리 지역 공동체에 그리고 우리 지역 이웃들에게 깨어있는 도움의 시선들을 가져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내적 삶과 연대, 이 두 가지 핵심 주제는 우리 교회를 바꾸어 나가고 또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많은 우리 북독일 성당에서 전통적으로 봉헌 예물로 걸어 놓은 것처럼, Rostock의 젊은이들이 모임을 가졌던 큰 강당에도 시대 별로 모형배를 전시해놓았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크고 자랑스러운 그래서 호화로운 여객선이 아니게 된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교회의 배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찌그러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배모형들이 저에게 시사했던 바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소형 모터보트에 비할 수있는 그래서 큰 항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작은 배의 모양에 가깝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점점 더 작은 배를 닮아간다면, 아마 우선적으로 교회의 몰락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고 볼품 없는 배의 모습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겟네사렛 호수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앉아 계셨던 작은 배에 가까워집니다. 작은 배는 볼 품 없지만, 빠르고 신속하게 항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작은 배가 의미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각자가 수행할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교회의 이러한 진심 어린 초대를 스스로 자각하도록 북돋으려 합니다: 어떻게 내가 올바름, 곧 정의를 스스로 살고 또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가? 어떻게 나는 내적인 삶을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북돋울 수 있을까? 작은 배들은 작은 모임 속에서는 서로가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저는 우리 교구의 한 단체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교회는 또한 여러분들의 작은 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 스스로 공동체를 동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 중 몇몇은 Rostock에 계셨고, 몇몇 분들은 다가오는 리스본에서 열릴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에 참가 신청하셨습니다. 동년배와 만나는 것은 신앙의 측면에서 중요한데, 이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을 확고히 할 수 있고, 중요한 경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희망을 보이십시오!” 라는 표어 아래 여러분을 다가오는 여름에 열릴 열린 주교의 집 행사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규모로 모여 신앙과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저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통해 희망으로 가득차고 또 그것을 살아내는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많은 분들께서 저에게 이메일, 소셜미디어 채널, 비디오 영상, 문자 또는 다른 여러 방법을 통해서 여러분의 생각을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들의 창조성과 정의를 위한 참여, 그리고 여러분들의 하느님을 찾고자하는 마음을 여러분들의 내적인 삶 속으로 온 힘을 다해 펼치십시오. 함께 하고자 하는 한 사람, 두 사람을 찾아 함께 수행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을 이어 줄 다리도 만들어 보십시오. 희망에는 항상 공동체가 함께합니다. 사람은 온전히 혼자서는 희망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이곳 함부르크 교구에서 함께하는 다양한 모습의 교회의 젊은 얼굴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Rose Ausländer 라는 시인은 “희망하는 사람, 그 사람은 젊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신선함과 젊음을 저는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서 희망합니다. 모든 분들께서 참된 희망 안에서 보호 받고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주교

+스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