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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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5)
 
 
7. 하느님의 교육 방법

열심한 신자인 베드로씨가 늦둥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 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베드로씨가 주고 싶은 가장 좋은 것이란 바로 신앙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씨가 아들에게 신앙을 물려 주는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어린 아들은 신앙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씨는 평생을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추어 하나씩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계시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에게 다가오셔서, 당신의 내면을 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계시는, 베드로씨의 예에서와 같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점진적으로 인간에게 당신을 알려 주시며, 사람이 되신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명 안에서 절정에 이르게 될 초자연적 계시를 받아들이도록 단계적으로 인간을 준비시키신다.”(가톨릭교회교리서 53항)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즉 구약성경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긴 역사 과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당신의 모습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1) 아브라함에서 모세까지 :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심으로써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계시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참된 하느님은 야훼 하느님뿐이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나갔습니다. 또한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기적적인 탈출을 경험함으로써 “야훼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다”는 것과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 왕정 시대와 예언자들 :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BC 1000년) 이스라엘은 번영의 절정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성공에 현혹되어,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을 저버리고, 가난한 이웃들을 짓밟았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이스라엘 편이시기 때문에, 제사만 잘 드리면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보내시어,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정의의 하느님, 상선벌악의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불충하고 이웃을 돌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고 경고했습니다.

3) 유배 시대와 예언자들 : 예언자들을 통해 전달된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BC 586년) 이역만리 유배지에 끌려간 이스라엘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바로 이런 절망의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예언자들을(에제키엘, 제2이사야) 보내시어, 또 다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멸망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의의 하느님보다 더 깊은 하느님의 모습이 계시되었습니다. 그것은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와도 같은 자비로우신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이십니다.

쓰라린 유배 시절을 겪으면서, 그리고 기적적으로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BC 538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보다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하느님 이해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전능과 정의와 자비의 깊이를 온전히 다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통한 하느님의 계시는 어디까지나 준비 단계입니다. 하느님 계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같은 식의 이야기가 너무 자주 반복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 → 그것에 대한 심판으로서 고통을 당함 → 백성들의 회개 → 하느님의 구원”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바보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반복 속에서 이스라엘은 조금씩 하느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날 결정적인 하느님의 계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준비되어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계시는 오늘날 우리 개개인의 신앙 생활 안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부는, 이러한 하느님의 점진적 계시를 “하느님의 교육 방법”(Pedagogy of God)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원래 페다고지는 어린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기 위해서 부모가 손을 잡고 어린이와 보조를 맞추어 함께 걷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크신 사랑과 깊은 인내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계시를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그분의 방법도 참으로 감동스럽습니다.

[2012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의정부주보 4-6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