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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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akoka.de/zbxe/frei                                 <살아 만납시다!>

                                                                         루르 공동체 조영만 세례자 요한 신부


찬미예수님!

<재독 한인 천주교회 40주년 기념 합동미사>를 준비하시느라, 프랑크푸르트 성당의 형제자매님들과 본당 신부님께서 지난 1년간 얼마나 고생하시어, 이토록 융성하게 차려놓은 밥상인 줄을 잘 아는데, 그런 밥상 앞에 당연히 손님 맞는 ‘주인’ 신부님의 강론이 의당 우선이어야 하나, 이거 어디서 나타났는지 루르 촌구석에서 온 신부가 강론하겠답시고, 이렇게 먼저 밥숟갈 뜸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독일에서 사목하고 계시는 신부님들 중에 루르 신부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는 이유 하나로, 신부님들끼리 박수 세 번 치고는 통과시키고 말더만요. 그 날 이후, 아마 다른 신부님들은 지금 이 시간을 까맣게 잊고 행복하게 지냈을 것입니다만은, 저는 그날 이후부터 이 40주년 기념 미사만 생각하면 밥맛이 뚝 떨어졌습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시지요? 그야말로 “남•녀•노•소”,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청년부터 학생들까지, 광부들에서 간호사들까지, 유학생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2세까지, 상사직원에서 연수생들까지, 이건 뭐 ‘한국사람’이라는 것과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빼고 나면 아무런 공통점도 없고, 개연성도 없고, 짜달시리 별 인연도 없는 사람 천 명을 앉혀놓고 저 신부가 막막하게, 도대체 무슨 말로 강론을 시작할까? 여러분도 궁금하시지요?

예, 저도 궁금합니다. 그래서 본 행사를 주관하신 김광태(야고보) 프랑크푸르트 주임신부님께 전화를 넣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김광태 신부님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각 공동체를 지켜 오신 신자분들 모두 격려해주시고, 앞으로도 신앙생활 잘 해나가자! 뭐 그 정도 말씀해주시면 안 되겠어요?”

“아하! 이렇게 간단한 것을...” 전화 끊으며 그런 생각이 듭디다. “그렇게 간단하면 그냥 당신이 하시지...” 어쨌든 덕분에 재독 한인 천주교회 40주년 기념 합동 미사를 주관하신 주임 신부님의 메시지는 제가 대신 다 전달한 것 같습니다.

베를린, 함부릌, 퀼른, 뮌헨, 루르, 프랑크푸르트,  저마다 바르고 성실하게 한국 땅에서 보다 몇 배로 더 열심히 살아오지 않으셨으면 맛보지 못했을 이 40년의 세월을, 이기고 견디어 내신 덕분에, 우리 젊은 세대들이 아직도 독일 땅에서 한국인 신앙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시고, 또한 이를 통하여 거듭 성장하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각 공동체를 지켜 오신 모든 선배 신앙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박수쳐드렸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늘 40년의 시간을 빌려 떨어져 있던, 말 통하고, 정 통하고, 핏줄 땡기는 형제자매들 따순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주기 위해 지난 1년을 고생하셨을 프랑크푸르트 본당 신자들에게도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박수쳐드렸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새벽부터 독일의 몇몇 동네가 시끌벅적 했습니다. 미처 잠도 끝내지 못한 채 출발하셨을 먼 동네에서, 그래도 모처럼 내 친구들 얼굴 한 번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설래신 분들이 많으셨지요?

어디가 가장 먼가요? 베를린은 몇 시에 출발하셨어요?   (두시!)  뮌헨은요?  꼬박 여섯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고향 가는 길이 늘 그렇습니다. 한가위다 설날이다 선물 보따리 꾸려 고향 내려갈 때 이건 유도 아니었습니다. 생고생하면서도 들떠서 내려갑니다. 다른 것 있어서 고향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이 고향>입니다. 부모가 고향이고 형제와 이웃들이 고향입니다.

오늘 프랑크푸르트를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저는 여러분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단지 우리가 한국 사람이고 우리가 단지 독일에 살고 있는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서로가 서로에게 고향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그제서야 저도 설레이고 저도 들뜨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살면서 설레이는 날이 별로 많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심심한 독일에서 살면서부터 설레인다는 것을 제 개인적으로는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산다는 일에 설레임이 없으면 감동이 없고 긴장이 없는 법이지요.

비록 몸은 ‘심심한’ 독일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최소한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인식하며 살기 위하여 우리들은 저마다의 시간에 어떠한 ‘분기점’들을 마련해놓습니다. 생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기념일들, 축일과 각 절기의 축제일, 그리고 전례의 기념일들을 통해, 우리들은 끊임없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만나게 합니다. 결심을 다지게 되고 희망을 염원하게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단지 만나는 반가움도 크고,  20Kg짜리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떠나온 이 땅에  40풍상을 겪으며 장성시켜낸 자녀들과 든든한 신앙 공동체를 훌륭히 키워내신 보람도 크겠지만,  오늘 이 자리는 비단 그 반가움과 보람의 자리를 넘어,  하느님께서 성실했던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일구어 놓으신 이 많은 열매들을 만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40년이라는 광야의 시간에 초대된 우리들이 앞으로의 세월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결심하고 희망하게 합니다.

40년을 기념하는 이 자리, 모두가 초대되었지만 그 모두가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40년을 기억하는 이 자리, 함께 독일에 왔으나 이제는 이곳에 올 수 없는 이들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40년을 기뻐하는 이 자리, 저는 이 자리가 기쁠 수 있는 이유가 저마다 신앙의 역사를 통해 감당해왔던 여러분 자신의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기에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고, 고국은 떠났을지라도 하느님의 나라를 떠난 적이 없었던, 나의 동지同志요, 나의 형제들이 이렇게 많음에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독일 땅에서 <한국 천주교 신자>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신앙 때문에 모진 세월 앞에서도 선선하셨던 위대한 순교자의 후손들이고, 지금 대한민국이 잃어가고 있는 가치들 -바르고 성실한 사람들이 합당한 대접을 받고, 사람이 사는 일에는 돈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아야 함을 인정할 줄 알기에-   이곳에서 도리어 더 한국인답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고, 똑똑하고 잘남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어 섬김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일구어내고자 애쓰는 신앙인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애씀’이 신앙을 통해 살아있기에 오늘 이 자리와 이 만남은 설레이고 반가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아까 미사 전에, 노구의 어느 어르신이 광부 동기생을 만나 이렇게 인사하시더만요. “이 문둥아! 안 죽고 살아 있었더나?”   그리고 어떤 자매님 두 분은, 제가 볼 때는 두 분 다 ‘할머니’신데 서로 반가움에 손을 부여잡고, “야, 니는 하나도 안 늙었데이... 옛날 그대로네...” 하시니 상대 자매님의 화답이 더 가관입니다. “야, 니는 더 예뻐졌데이...”

그렇습니다.  여자들은 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심장은 나이를 안 먹는 법이지요. 그래서 늙어서도 “더 예쁘다.” 하시는 우리 자매님들,  그리고 이렇게 “안 죽고 살아 있으니 만나게 된” 우리 형제님들,  오늘 40주년의 이 미사를 통해 부디  <하느님 앞에서도 부디 살아>계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시간 40년, 고난과 시련의 기간 40일, 죽음의 세상에서 마른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그 ‘방주의 40주야’... 여기서 중요한 것은 ‘4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 세월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이 중요한 것이고, 그 남은 자들에게만 이 시간은 의미 있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살아남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앞에서 더욱 ‘분명하게’, 이 신앙과 믿음 앞에서 더욱 ‘당당하게’ 살아남으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만날 것입니다.

세상이, 세월이, 그리고 이 육신이 자꾸만 우리를 지치게 할 것입니다. 희망이 옅어지게 만들 것이며,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잊어버리게 만들 것이고, 나만 바보처럼 이렇게 사는 것인 냥, 맥 빠지게 만들 것입니다. 그 때마다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 안에 살아 있는 일이라고! 하느님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나는 이 세상과 이 육신을 이기겠노라고! 어짜피 ‘나그네 인생’이고, 돌아갈 ‘본향本鄕’은 이미 정해져 있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아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죽어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겠는가!

그러니 살아 있는 내가 이웃들에게 하느님이 되어주고, 그러니 살아 있는 내가 공동체 속에 예수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하느님 앞에 살아 있는 그런 신앙인들을 만남으로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예수를 통해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예수 안에 깃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다시금 <예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심>을 만났습니다.  거기로부터 교회라는 공동체가 출발했습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의 의미는 <만남>입니다. ‘위격’이 세 개고 어쩌구, ‘본성’이 하나고 어쩌구... 하는 교리는 우리 ‘신앙언어’일 뿐, 우리 신앙의 깊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안다고 믿음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매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고, 이를 체험하고 이를 통해 내가 이 세상 앞에 더욱 당당하고 든든해지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하루 세 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하시는 여러분.
하루 세 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의탁하시는 여러분.

우리의 하루 속에 살아계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느님께서
우리의 일생 속에 어찌 살아계시지 않겠으며,
우리의 이 40년 세월 속에 어찌 살아계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용서하고, 살아계신 성령 덕분에 세상을 거슬러 살았노라고 말하실 수 있다면,  일찍이 “나는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느님”(루까, 20,38)이라 하셨던 그분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심에 저는 기뻐하겠습니다.

부디 우리 하느님 앞에 살아서 만납시다.
세상에 죽지 말고, 육신에 죽지 말고, 판단과 단죄와 미움에 죽지 말고, 살아서, 만납시다.

죽은 고래는 제 아무리 덩치가 커도 물살 따라 흘러갈 수 밖에 없지만
살아 있는 송사리는 아무리 작아도 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살아 있는 송사리의 그 힘참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 세상을 이겨 가시기 바랍니다.

넓은 세상 나와 살지만, 막상 살아보면 좁은 동네입니다. 여러분들의 동네에서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위대한 증거자들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 다시 우리가 만나지 못하더라도, 독일 땅 어디에선가 지금도 <기도하는 한국인>들이 살아있음에 든든한 마음 되어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