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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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총을 누리는 세 가지 길.    




    첫째, 성사를 통해서 은총을 누립니다.

    성사(聖事)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은총을 주시기 위해 세우신
    은총의 통로로써, "보이지 않는 표지(標識)"를 통해 "보이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도록 해줍니다.

    성사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때문에 성사 집행자의 성덕에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베풀어지는
    무상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별로 열심한 신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은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사효적(事效的)이라고도 말하는데
    이러한 성사은총은 "성화은총"의 특수양식이며 "조력은총"이 구현되는
    현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성사은총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구체적
    인가를 칠성사를 통해서 체험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하고 교회가
    맡긴 은총의 효과적인 표징인 성사를 통해 우리들은 한평생 은총을 동반하고
    살아가는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상징 행위를 통하여
    1)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원죄"와 "본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생명"을 얻게 됩니다.

    2) "견진성사"를 통해 우리는 성령의 특별한 능력, 즉 성령칠은(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움) 또는 아홉 가지의 은사(1고린 12장)를
         받게 됩니다.

    3)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생명의 양식"을 먹고 양육되며, 미사에
         참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이웃과 일치"를
         확고히 하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4)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사함"을 받고 하느님과
         교회와 다시 "화해"할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5) "혼인성사"를 통해 우리는 "평생축복"이라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6) "병자성사"를 통해 우리는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7) "성품성사"를 통해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받아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며,   세상의 구원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교회의 축성을 받게되며, 이렇게 축성된 사제를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축복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품성사는 이중(二重)의 은총을 얻게되는 성사라고 합니다.

         이처럼 가식적인 표징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는 하느님으로
         드러내는 가식적인 표징"의 성사는 우리 삶 안에서 밀접한 연관을 지우며
         우리를 끊임없이 성화를 시켜주고 있으며, 이러한 성사는 우리가 의식하는
         부분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無意識)까지도 성화를
         시킵니다.

    성사는 "말씀"과 "행위"라는 두 가지 요소로 되어있는데, 이 두 요소는 인간의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을 성화 시키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간의 의식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화되나 무의식까지는 성화 시키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의식 성화는 성사 안에서 하는 "행위"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즉 물로 씻기고, 기름을 발리고, 입으로 영성체를 하는 등 직접 몸으로 느끼면서
    자신도 미처 느끼지 못하는 모든 것을 성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를 찾으면서 새롭게 마음가짐을 해보십시오.
    만약 미사참례를 형식적으로 의무적으로 해 나왔다면, 또 영성체를 큰 의미를
    느끼지 않고 받아 먹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 의미를 느끼면서 성사에 임해
    보십시오.
    단순히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백성사에 임하는 것보다 진정 고백성사로 인해
    내가 받을 수 있는 은총을 느끼게 된다면 그 의미는 더 큰 은총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호를 그을 때도 마음을 가다듬어 천천히 성호의 의미를 음미하며
    그으십시오.
    성당에 들어서서 성수를 이마에 찍을 때도, 또 무릎을 꿇을 때도, 의미를 느끼고
    진지하게 행위에 임하도록 하십시오.
    묵주, 성화, 등등 교회 안의 상징 행위와 상징물은 저마다 우리를 성화 시켜주는
    은총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도를 통해서 은총을 누립니다.

    "성사"가 은총을 받는 공적(公的)인 통로라고 한다면, "기도"는 개인이 언제든지
    어떤 은총이든지 구할 수 있는 사적(私的)인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길에는 기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기도를 통해 은총을 주시는 것은 우리들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그 사랑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우리들에게 내어놓으신 하느님이신 데 그 어찌 작은
    선물에 인색하시겠습니까?

    기도를 신앙생활에서 의무로 생각하신다면 잘못입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세끼의 밥을 찾아먹는 것과 같이 생활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밥을 먹는다면 기도는 영혼의 양식을 채우기
    위해 먹어야 하는 밥이고 "영적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일용한 양식과 필요한 모든 은총을 청하고
    기도하며 용서의 은총을 청할 수 있습니다.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루가 18,13)(청원) 궁지에 몰렸을
    때나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도움의 은총을 구하며, "나를 굽어보소서,
    고통받고 불쌍한 이 몸입니다.
    "(시편 25,18),
    "야훼여,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 애원하는 소리를 귀담아들으소서,
    주께서 분명코 대답해 주시겠기에 이 몸이 곤경에 빠져 주님께 부르짖사옵니다."
    (시편 86, 6-7)(탄원),
    선택의 기로에서 삶의 깨달음과 지혜를 얻기 위해,
    "당신의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빨리
    내려주시고 영광스러운 당신 왕좌로부터 보내주소서, 그리하여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일하게 하시고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소서." (지혜 9,10) (상담) 라고 기도를 드리며 영혼의 양식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부르며 나에게 와서 빌기만 하여라. 그렇게 하면 들어 주리라."(예레 29, 12).
    그러나 로또 복권을 한 장 사놓고 당첨되기를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를 드리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방법이 아닐 때는
    그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를 하다보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하니 우리의 소망이 기도 안에서 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정화 된 가운데 이루어지면 그 순간 우리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축복의 은총이 내려질 것입니다.


    셋째. 삶이 은총입니다.

    내일의 기쁨을 찾기 위해 순간으로 주어지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삶 자체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각하고 나의 존재를 탄생시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우선 내 삶부터 생각하다보니 정작 나의 존재를 만들어 주신 분은 뒷전으로 미뤄놓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만 필요로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따금 제 스스로에게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을 해봅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과연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나의 형제로 생각하고 나의 벗으로 받아드릴 수 있을까?
    수없이 생각해 보았지만 제 머리는 살랑살랑 흔들려 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나는
    내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내 것부터 챙기려는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섬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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