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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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9 19:31

본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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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의 날에 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을 겪었습니다.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결코 웃을 수는 없는 일을 겪었습니다.

신자분들은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너무 민감한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단순히 책상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라는 전례에 사용되고 있다면 그건 그냥 책상이 아니라 제대입니다.

저는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제대를 치웠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제대와 책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신자분들의 그 마음자세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그것도 저보다 더 오래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도 많으신데 말입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실수한 것뿐인데 왜 그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꼬투리를 잡아야 하느냐고.

솔직히 제가 옹졸한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기본적인 마음자세부터

바꿔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이야기하시지만

그렇다고 마르타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이

마르타에서 멈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자꾸만 많은 일에 신경을 씁니다.

미사시간에도 ‘점심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미사는 뭐가 됩니까.

미사는 식사를 위한 예행연습 정도에서만 머뭅니다.

미사를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으니까 그냥 미사를 하는 겁니다.

빨리 미사를 끝내놓고 식사준비를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그 미사는 어떤 의미를 주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시간 때우기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언젠가도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지방공동체에 갔을 때,

신자분들이 성당에 오면서

성당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하느님께 인사를 먼저 드리기보다는

가져온 음식을 공동체가 식사하는 곳에 갖다 놓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이분들은 음식이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신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단순한 실수라고 하시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그건 결코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이미 그런 생각들이 온통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제대와 책상을 구분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제가 화가 났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글 중에 “하느님은 3등이십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

많은 경우 정말로 하느님은 세 번째의 위치밖에는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것들이 맞물려서 저는 오늘 너무 화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는 어느 특정인에 대한 화가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한 자조 섞인 화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화를 내어서 죄송합니다.

감정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의 고집스런 마음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저는 본당의 날 행사가 참 좋았지만 여전히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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