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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6:32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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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만난 김 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

우리나라에 큰 별이 떨어지던 지난 2009년 2월16일,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김수환(스테파노)추기경님의 서거를 슬퍼하며 아쉬워하던 날의 5주기를 맞이하게  되였기에 다시 한 번 더 추기경님의 삶을 기억해 보고 싶어서 이 시간을 가져봅니다.
김 수환추기경님은 아버지 김영섭(요셉)님과 어머니 서 중하여사의 5남매 중 막내로 1922년5월8일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김보현(요한)조부님께서 1868년 무진박해 때, 서울에서 순교하심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잃은 김영섭(요셉) 부친께서는 어려운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옹기장사를 전전하며, 고생고생하시다가 막내아들이 1학년 재학 중에 세상을 떠나는 아픔 속에서도, 어머니 서 중하여사께서는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키우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옹기장사와 포목장사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아들을 군위공립보통학교 5년 과정을 졸업시키셨고, 193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 과에 진학하시어, 성직자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시작으로 서울에 있는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에 입학하시어 1941년에 동성학교를 졸업하시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시어, 그해 4월에 일본도쿄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시어 공부를 하시고, 1946년 12월에 귀국하시여 곧바로 서울성신대학으로 편입하시고, 4년 뒤 1951년 9월15일 대구 계산 동 주교좌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첫 사제의 길을 시작으로 1956년 7월에 독일 뮌스터 대학원에서 8년간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시고, 64년 귀국하시여 6월에 가톨릭 시보사 사장으로 취임하신 뒤, 1966년 2월15일 44세의 나이로 마산교구설정과 동시에 초대교구장으로 임명되시었고. 다음해 67년 초 서울대교구장 노기남(바오로)대주교님께서 교구장직을 사임하시면서, 그 당시 김 수환주교님께서는 1968년4월에 제12대 서울 대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대주교님으로 승품하신 뒤, 드디어 천주교창립185년 만에 1969년 바오로 6세 교황님에 의해 대한민국에 최초로 추기경님으로 선임되셨습니다.
김 수환추기경님께서는 세계136명의 추기경님 중 최연소자로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천주교 의장직을 열심히 수행하시다가 2009년2월16일18시12분에 87세의 나이로 대한민국에 큰 별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을 남기시고, 하느님 곁으로 가시는 영원한 삶을 가르쳐 주셨으며,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 스스로 호흡을 하시며 큰 고통 없이 “고맙습니다.”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가시는 순간까지도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간절히 바라시던 소원이 이루어지던 1951년, 당시69세인 서 중하여사께서는 아들의 사제수품으로 벅찬 감격에 성당 맨 앞자리에 꿇어앉은 채 십자가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하느님께 감사하시던 모습을 상상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김 수환추기경님 3살 위이신 형님 김 동환신부님께서도 대구결핵요양원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평생을 봉사하시다가 1983년에 선종하신 슬픔 속에서도, 김 수환추기경님께서는 1998년 75세의 나이를 넘기시며 은퇴하실 때까지 서울 대교구장으로 계시면서 8번의 명예박사학위를 취득하셨고, 우리나라 가톨릭의 영광이며 자랑인 103위 성인이 탄생하는 역사를 남기셨으며, 바오로2세 교황님께서 두 차례의 방문으로 대한민국에 천주교가 급속도로 알려지면서 26%의 성장률을 자랑하는 바람에 타 종교계에서 비상이 걸리는 특이한 역사의 변화를 보여주셨는가 하면, 김 수환추기경님의 삶은 1970년 유신체제 이래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는 정치가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셨고, 특히 1972년 유신헌법이 제정되기 직전 서슬이 퍼런 시절 전국에 생중계되는 미사 중에 박대통령의 정치를 정면 비판하는 일이 있었으며, 1980년 새해 인사차 추기경님을 방문한 전 두환 대통령에게도 쓴 소리를 쏟아 내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시기도 하시어, 한국사회에 종교를 추월해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거목으로 자리 잡은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생전에 추기경님은 소외된 이들의 벗이었고, 장애인과 사형수들을 거리낌 없이 만나셨고, 거리에 나앉은 농민들과 저소득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하여 평생을 바쳐오셨으며, 1987년 4월 도시 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자문기구로 설립하여 이후 서울교구에만 복지시설이 150개소를 훌쩍 넘길 정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수탈하고 다정했다는 소문과 같이 마산교구장과, 서울교대교구장을 거쳐 추기경의 자리에 까지 오르지만 권위의식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는 것과, 매춘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복귀를 도와주며, 그들에게 항상 사랑을 가르치셨으며, “나는 죄인입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알면 나를 돌로 쳐 죽일 것입니다.”라는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쳐 희망을 주셨고, 교도소를 방문하여 사형수들에게도 “여러분은 들킨 죄인이지만, 나는 숨겨져 있는 죄인입니다,”라며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서 살고 있다며 위로하셨기에, 많은 사람들이 반성하고 회개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눈물을 흘리고 반성하는 시간을 만들어 격동하는 한국역사 속에 민족을 위해 사회 전면에 나서는 강직함도 보였고, 조계종 길 성사 개원 법회에 참석하는 등 이웃 종교계를 감싸 안는 넉넉함으로 시대를 밝히기도 하셨습니다.
김 수환추기경님은 은퇴 후 내 삶을 돌아볼 때마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셨던 추기경님께서는 이 세상에 큰 사랑을 남기고도 모자라 각막기증으로 앞 못 보는 환자를 살리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진 거라고는 통장에 천만 원, 그것도 외상값을 갚고 나면 부족 할 거라는 보도가 나가자, 추기경님의 삶을 본받자는 사랑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하루30건에서 오늘400건으로 늘어나고, 미혼모 자녀입양신청 문의가 줄이 이어지는 기적이 전국방방곡곡에 퍼져 나가고 있다는 보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또 울리고 있는 것은,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며 사세요.”라고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추기경님의 선종한 가운데 고인의 향기로운 삶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려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40만을 넘어선 추모행렬 열기의 꼬리는 남산1호 터널 쪽 대로변을 가득 채우나 싶더니 명동지하철 쪽으로 계속 늘어나고, 명동 크고 작은 골목에도 꽉 채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아량 것 없이 3시간 50분을 기다려야 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이념, 세대를 초월해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모행렬은  모두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주는 사회적 현상이며, 질서정연 하고 쓰레기 하나 없이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수 있었던 추모객들의 마음은 오로지 추기경님의 리더십이나 권력이나 힘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로 하늘에 별이 떨러진 것과 같고, 마음이 슬프고 눈물이 그냥 흘러나온다며 울먹이며 기다리는 추모객들의 모습에서 기적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는 역대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 인사들이 저마다 아쉬운 말을 남기며 애도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늘 같이 계실 줄 알았던 김 추기경님을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길로 떠나보내며 부자들과 서민들 백발의 노인들과 장애인들 택시운전사들과 승객들  상인들과 행인들 , 공무원들과 회사원들 아니 대한민국에 모든 국민들이 김 수환추경님의 가시는 길이 아쉬워 두 손을 꼭 모으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하는 고별에 인사를 나누는, 하나가 된 모습은 작은 천국으로 변화된 기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유인촌 장관과 모든 장관들과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조 용기목사님 이 천환 성공회초대주교, 이 수빈 삼성생명회장, 김 우종 전 대우구릅회장, 현 정은 현대그룹회장들은 사랑과 용서, 희망과 용기를 주신 큰 어른이며 모든 국민들의 얼굴 정치인들의 지도자이신 김 수환추기경님의 마지막 뒷모습은, 그분의 흔적은 언제나 약자의 자리에 서 계시던 분, 검소와 사랑을 실천하고, 단정하고, 소박했다고 애도의 말씀으로 아쉬워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셔요.” 마지막 남기신 말씀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 깊이 머물러 있습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