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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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8 21:29

명동성당 대림특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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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catholic.or.kr성탄, 놀라운 기쁜 소식

                                                                    강신모 신부(의정부교구 행신1동본당 주임)
인생의 궁극 목표인 절대자를 찾는 종교는 크게 수양종교와 구원종교로 나뉜다. 수양종교는 인간이 요가나 명상, 덕행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절대자에게 다가가는 종교로, 불교가 대표적이다. 반면 구원종교는 인간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려와서 인간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구원종교 입장이다. 하느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만나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 구원종교의 핵심으로, 그리스도교가 이에 속한다.

 하느님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고 구원하신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핵심 메시지다. 하느님은 겉으로는 무섭고 다그치지만,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어도 다 용서하는 한없이 자비로운 분이란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절정에 이른다. 하느님이 죄 많은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자신을 낮추다 낮추다 못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낮춤과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있은 연후에야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나환자를 돌보다 나환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또 나환자가 된 것을 기뻐한 다미아노 신부는, 사랑은 상대방과 하나되는 것이라는 참 사랑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하나됨이다. 그토록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성탄보다 더 놀랍고 기쁜 소식은 있을 수 없다.

 성탄으로 드러난 하느님 사랑이 회심으로 이끈 성인은 한둘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프라도 사제회 창설자인 슈브리에 신부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들은 성탄을 통해 한없이 자신을 낮추신 하느님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을 돕는 데 헌신했다. 올해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구유가 만들어지고 수억 명이 그 구유에 경배할 것이다. 구유를 경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슈브리에 신부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추신 하느님 사랑에 감동받아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성인성녀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성탄의 기쁨을 구체적 실천으로 옮기는 방안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면 좋겠다.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너무 많아 부담을 가지는 신자들이 많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켜야 한다는 자기 잣대에 얽매이지 말고 하느님을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둘째, 성체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다. 성체는 또다른 형태의 낮춤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다 못해 먹히는 빵으로까지 낮추신 것이다. 이 성체를 통해 하느님의 낮추심이 더욱 완벽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성체를 모시는 성체성사, 즉 미사에 열심하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성체조배는 일년 사시사철 성탄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많은 참여를 바란다.

 셋째, 구체적 실천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셨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분 뜻에 따라 우리도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데 적극 나설 때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