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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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부와 간호사 (경향신문 에서)

한강에 달랑 다리 세 개가 걸려 있을 때, 이 땅의 건강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갔다. 광부들은 1963년에, 간호사들은 1966년에 독일 땅을 밟았다. 광부 지원자 중에는 대학생, 대학 졸업생들이 수두룩했다. 손이 고우면 뽑히지 않을 것 같아 깜장칠을 하기도 했다. 동방에서 온 키 작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다. 독일인들이 하기 싫은, 하기 힘든 일들을 도맡았다.

지하 1000~1500m 막장에서 탄가루를 마셨고, 간호사들은 이방인들의 시신을 닦아주기도 했다. 고향 하늘이 어디 있는지 몰라 동쪽으로 돌아누워 잠을 청했다. 받은 월급은 모두 고향으로 보냈다. 그 돈으로 동생들은 학교를 다녔고, 아버지는 밭뙈기를 사거나 토담집을 수리했다.

1960년대 한국은 최빈국 중 하나였다. 포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너나없이 가난했고 허기졌다. 마땅히 내다 팔 상품도 없었다. 믿을 것은 사람뿐이었다. 광부 7968명과 간호사 1만여명을 독일에 파견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받는 월급을 담보로 차관을 들여왔다. 그 돈으로 고속도로, 제철소, 화학공장 등을 지었다. 모국의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이들을 격려했다. 유독 키가 작은 대통령 앞에서 한국의 아들•딸들은 눈물만 쏟았다. 대통령도, 수행원도 모두 울었다.

조국은 아득히 멀리 있고, 현실은 차갑기만 했다.
지금은 유명한 일화이지만 당시로는 슬픈 삽화였다.

정부 간 계약으로 광부를 독일에 수출한 지 47년이 흘렀다. 젊음은 간 곳이 없고, 그들은 이제 60•70대 노인들이다. 이국 땅에서 청춘을 조국에 바쳤지만 조국은 여전히 멀리 있다. 독일에 남은 사람도, 한국에 들어온 사람도, 제3국으로 떠난 사람도 모두 떠돌고 있는 셈이다.

모국은 아직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 있다. 지난 21일은 파독 광부 1진 247명이 서울을 떠난 날이다. 300여명이 모여 기념 강연과 총회를 열었다.

그날도 참석자들은 눈물로 과거를 새겼다. 모국은 눈이 부시게 성장했지만 그럴수록 자신들은 더욱 초라해진다. 그들은 기념관이라도 하나 세우고 싶어한다.

김황식 총리는 지난 9월30일 인사청문회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얘기가 나오자 “그분들의 공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울먹였다. 그 말에 날개가 돋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는 가난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