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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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7 18:34

비움의 미학

조회 수 1264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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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tholic.or.kr/비움의 미학
                                                                                        

결혼해서 그동안 이사를 자주 한 편이었는데, 그때마다 느낀 점이 있다. 결혼생활 10여년 만에 크게 늘어난 살림살이들을 보며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안 곳곳에 무슨 짐들이 그렇게 쌓여 있는지. 일 년 아니 몇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그냥 방치된 채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쌓아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은 비움을 두려워한다. 잃은 것 같고 놓치는 것 같고 없어지는 것 같아서다. 텅 비었다는 말, 어떤 기분이 드는가? 비어 있다는 건 슬프고 외로운 것인가. 우린 비어 있으면 이것저것 채우려고 한다. 먹을수록 더 먹고 싶고, 살수록 더 사고 싶으며,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게 많아진다. 끝없이 욕심을 부린다.

그릇이 비어 있기에 맛있는 음식을 담을 수 있고, 가방이 비어 있기에 갖고 싶은 걸 넣을 수 있고, 마당이 비어 있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다. 마음도 비어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고, 다른 이들의 마음도 담을 수 있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면 넘치고 힘들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어버리고 산다.

우린 물건에서부터 마음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바라기에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갖지 못한 더 많은 것에 집착해 소유하려고 발버둥치며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즐겁고 행복해야할 우리 인생이 힘들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발목을 꽉 잡고 스스로 아프게 살면서도, 발목을 쉽게 놓지 못하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택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현재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욕심이 많은 탓이다. 욕심이 클수록 행복은 더 멀리 달아난다. 반대로 행복을 원한다면 욕심을 줄이면 된다. 비움의 미학은 욕심을 줄임으로써 행복을 얻는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명성을 쌓고, 더 날씬한 몸매를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했던 목표를 달성했건만 행복은커녕 두려움과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허전해지고, 더 외로워진다.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탓이다.

비움의 의미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하셨던 분은 예수님이시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를 낮추셨다. 하느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이러한 동등함을 내려놓고 사람의 모양을 취하시며 자신을 비우고 낮추셨다.
지금 하느님의 은혜를 가득 채우길 원한다면 먼저 비움의 연습을 해야 한다. 주님의 은혜가 들어올 틈조차 없이 마음 가득 채워진 세상의 욕심을 비우고 우리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은 채워져야 할 하느님 나라의 가치 대신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가치를 따라 쫓기듯 산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어느새 너무 멀리 와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한다.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던 세상의 가치를 버리고 처음 떠나왔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말이다.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지면 잠시 멈추어 서서 해지는 노을도 보고, 자연을 찾아 마음의 때도 벗겨내자.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르게 지쳐 있다면 성당에 조용히 앉아 기도를 바치자. 다시 당신 안에 그분을 향한 열정이 되살아날 것이다.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그동안 쌓아 두었던 집안의 짐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넓어진 공간에서 한결 가벼운 마음을 느끼고 싶어서다. 또다시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길 기대하면서.
                                                                  마승열          (hi-ma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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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춘배 2010.12.18 18:47
    이해가 다 가기전에 많이 차있는 지갑도 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웃에게 조금 비워주시면 않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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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2010.12.19 10:23

    "진리"라고 불리는 것이 참으로 고귀한 것 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엄청이도 큰 것 이라면
    모든 것을 사그리 치운다고
    담아질까요?

    두뇌속에 있는 것이 마음대로 치워지고
    벗겨 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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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춘배 2010.12.19 21:15
    고독님! 오랫만에 흔적을 남겨 주시는군요.날씨도 몹시 매운데... 문제는 어떤쪽에서 보느냐에 달렸겠지요. 진리라는것이 뭐 여기있다 저기있다 할 그런 성질의것은 아니니까요.뭐 각자의 그 릇만큼 담아지겠지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