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덩이를 강물에 던진 바보 ?
2009. 10. 21.
전에 어느 날, 한 낮에 한강(漢江)을 건너가는 나룻배에서 한 젊은이가 금덩이
를 강물에 던지니, 뱃사공과 그의 형이 놀래서 그를 쳐다보니, 그 젊은이가 말
하기를; 놀라워 하지지들 마시오. 내가 좀 전에 이 금괴(金塊)를 얻기 전에는
형제애(兄弟愛)로 형(兄)과 의(義)가 좋았으나 저 금덩이를 얻고 나서부터는 형
이 있음이 싫어지기 시작하고, 형이 보기 싫어서 형을 강물에 던지고 싶어져서
그 나쁜 마음을 없애려고 금덩이를 던진 것뿐이오. 하더라는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저런 바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군자(의인=義人)인 것이었다. 견득사의(見得思義, 논어 16,
10, )이 말씀은 군자는 생각하는 것이 아홉 가지가 있는데, 봄에는 밝음을 생각
하며, 들음에는 귀 밝을 것을 생각하며, .... 얻는 것을 보고는 의(義)를 생각하
는 것이다. 하는 공자의 말씀인 것이다.
방금(方今)말한 저 청년은 이런 논어에 있는 말씀과 자기의 욕심(慾心)과 싸우
다가 이욕을 버리고, 군자(君子) 유구사(有九思)하니.... 하는 공자의 말씀을 생
각하고 그(의로움)에 따라른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과연(果然) 그를 바보
니, 모자라느니 하고 말할 수 있을까? 설명을 할 필요도 없지만 그는 이욕(利
慾)을 강물에 던지고, 의(兄弟愛)를 선택한 용감한 젊은이였던 것이다. 나도 저
청년과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군자인 것이다.
“공자(孔子)왈(曰); 착한 것을 보면 미치지 못하는 것같이 하며, 착하지 못한
것을 보면 끓는 물을 더듬는 것과 같이 하는 사람을 내가 그런 사람을 보고
내 그 말을 들었노라.”(논어 16, 11) 하였는데 그런 사람은 공자의 제자(弟子)
들인 안자(顔子), 증자(曾子), 민자건(閔子騫), 자로(子路) 등(等)이 었다. 고
한다.
혹자는 공맹(孔孟)의 말씀이나 서책(書冊)에 쓰여진 것이라면 마치 곰팡이라
도 보거나 듣는 것같이 하지만, 그러는 그는 과연 저 제자들과 같이 유구사 하
여, 견득사의를 실천한다고 자신할 것인가? 생각해 볼만한 바보의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착한 것을 보면 미치지 못하니 선(善)에 분발(奮發)하려 하고, 작은
악(惡)이라도 보면 손을 데일 새라 움츠리는 그런 사람이라면 그는 군자이고
충실(忠實)한 신자(信者)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강에다 금괴를 던지던 그 바보가 아닐까?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
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드려 받게 될 것이다. .... ”
(마태 6, 24-34)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다르지 않은 논어의 말씀인 것이다.
의를 따르는 것은 하늘에 보물(寶物)을 쌓는 것(마태 6, 19-21)이고, 이욕을
따르는 것은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6, 31-32)이다. 라는 말씀으로 알아
듣자.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군자, 마태 6, 20)이고,
자기의 사욕(이욕=利慾) 을 따르는 자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는 사람
(마태 6, 19)으로 소인(小人)인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나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달린 것이다.
허심촌(虛心村, http://cafe.daum.net/hsdorf) 김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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