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만남 **
망설이다가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용기를 내어 내 생각을 기억해본다.
그러니까 지난 4월14일 월요일 날 아침 버릇처럼 뉴스를 보려고 핸디를 켜는 순간 뜻밖의 화면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한 화면은 두봉 주교님의 장례미사였다.두봉 주교님은 언제인가 부터 제가 존경해오던 주교님이셨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주교님의 장례미사를 볼 수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깜작 놀라며 생각했다. 어떻게 주교님의 장례미사를 우연일까? 어떻든 뜻밖에 주교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 화면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느님의 신비와 은총에 놀라고 감동하며 감사하고 있다. 사실 주교님과의 처음 만남은 그러니까 1981년 5월13일 우리는 파리 여행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스위스 제네바로 가는 길을 알아보려고 가까운 주유소로에 주차를 하는데 마침 옆에 불란서 사람이 차를 세우기에 기회다 싶어 제네바 쪽으로 가는길을 물었다. 마침 그분도 제네바 방향으로 가신다며 친절하게 밤길을 안내해주시며 우리에게 꼭 소개해 줄 분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자택으로 데려가 하루숙박을 제공해주신 참 고마우신 분이셨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준비하시며 우리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분이 계시다며 말씀하셨지만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때마침 불란서신부님께서 “안녕하세요!”하고 한국말로 인사하시며 반가워 하셨다. 불란서신부님께서는 1956년부터 한국에 사시다가 몇 년 전에 한국국적을 취득하셨다며 현재는 안동교구에서 사목하시고 15년 만에 휴가차 고향을 찾았는데 오늘 친구덕분에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을 불란서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다며 기뻐하셨다. 그 신부님이 한국국적을 취득하신 바로 박노제 신부님이셨다. 불란서 신부님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 해주신 분은 신부님의 대학동창이며 고향친구인데 현재는 불란서 모 보험회사 회장님이신 미카엘 씨는 현재 안동교구 농민회회원이라고 소개해주시며 신부님께서도 안동교구 농민회회원으로 어려운 농민들을 돕고 있는데 정부와의 이견차이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시다 며 눈물을 보이시는 바람에 제 마음도 함께 찡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헤어져야 하는 아쉬운 시간을 만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신부님을 불란서에서 만남이 이루어질 수가 있었을까 생각해보지만 이는 분명히 하느님의 신비요 축복이며 은총이라 믿고 싶다.
그 후로 신부님과 미카엘 씨와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계가 계속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못했던 편지한통을 받게 되었는데 1983년 언동교구 성체대회행사가 있던 날 박로제 신부님께서 심장마비로 선종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주신분이 바로 두봉 주교님 이셨다. 이렇게 두봉 주교님과의 처음 만남이 시작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봉 주교님과의 인연도 잊어가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성탄카드를 하나 받게 되었다. 너무나 뜻밖의 반가운 소식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인사를 전하게 되면서 인연이 되어 얼마 전까지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오늘 뜻밖에 주교님의 장례미사를 화면을 통해서나마 함께 할 수 있기에 감사하고 있다. 주교님과의 마지막 만남은 2004년 의정부교구 행주산성성당에 계실 때 저희를 초대해주셨을 때였다. 그날 주교님께서 한국말로 따뜻하게 맞이해주시던 그 순간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선종하신 작은 예수, 두봉 레나도 주교님께 영원한 평화의 안식과 천상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과의 만남과 또한 우리 함부르크한인성당가족들과의 만남도 하느님은 의총이며 축복이라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다.
2025년 11월14일 김 진호 (프란치스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