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항아리

by 박철현 posted Jul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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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자신의 지난 삶을 뿌듯하게 여기고

대견스런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시절의 보송보송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세파에 시달리고 찌든 얼굴이 보입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도 없고

왠지 나이만 먹었다는 생각에 서글프고 한심하기도 합니다.

정신적, 영적으로라도 일취월장해서 내적인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지만

내면은 더 척박해지고 여유도 없습니다.

이런 모습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금가고 깨져 물이 줄줄 새는 낡은 항아리.’

사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하느님 앞에 깨진 항아리 같은 존재입니다.

세월이 준 상처로 여기 저기 금이 가서 물이 줄줄 새는 항아리입니다.

돌아보니 젊은 시절에는 하루 피정만 잘해도

‘백만 볼트 에너지’가 충전되었습니다.

크게 뉘우치고 의기충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요즘 말로 약발이 잘 먹혀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피정을 해도, 열심히 기도를 해도, 이것저것 추구해 봐도

뭔가가 부족한 듯이 느껴집니다.

채워도 채워도 그 갈증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그 이유가 뭔가 고민한 결과 금방 답이 나왔습니다.

저도 이제는 금가고 깨진 물 항아리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채워도 워낙 금가고 깨진 곳이 많다 보니

금방 다시 쏟아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있습니다.

하느님께는 항아리가 깨졌든지 안 깨졌든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깨지지 않은 항아리보다

깨진 항아리를 더 소중히 여기는 분입니다.

인정할 것은 화끈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깨진 항아리인데도 불구하고 안 깨진 항아리인 양 자신을 포장하고 살려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하느님께 나아갈 때는 거짓된 나, 포장된 나가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상처입고, 금가고, 물이 줄줄 새는 나의 모습 그대로

하느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많이 깨졌으니, 이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연못에 우리 항아리를 풍덩 담구면 됩니다.

더 이상 물이 샐 일도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억지로 물을 채우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땅에 두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깨진 항아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