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에 조신부님과 함께 부활 성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평소에는 2시간 정도 걸리는 미사가 45분 정도 걸렸습니다.
1시간도 되지 않는 부활 성야 미사는 좀 낯설었습니다.
교구청에 있을 때도 1시간 30분 이상 걸렸던 것 같은데
확실히 짧아진 느낌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20시에 미사를 봉헌했을 터이지만
사실 여기서는 그때 즈음이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어서
부활 성야라고 이름을 붙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21시에 봉헌하게 된 것이지요.
중고등학교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거의 모든 성당에서 22시 30분을 전후해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래서 미사가 끝날 무렵이면 항상 자정을 넘겼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늦은 시간에 모여서 미사를 봉헌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던 저는 졸기도 많이 졸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사를 끝내고 내려오면 부활 달걀을 나누어주고,
또 어머님들은 어묵을 준비해 주셔서
영적인 허기뿐만 아니라 육적인 허기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행복한 모습으로
서로에게 부활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랬던 부활 성야 미사가 어느 때부터인지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21시에 봉헌하는 경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부활 성야 미사와 성탄 밤 미사의 경우에는
자정을 넘기는 것이 전례적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이 드신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배려해야 하는 것도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밤 깊은 때에 봉헌했던 미사들이
저의 기억 속에서는 더 포근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부활 성야보다 부활 대축일에 신자분들이 더 많이 오시는데
그것 역시 조금은 아쉽습니다.
낮미사보다 부활 성야 미사가 전례적으로는 의미가 더 큰데
요즘에는 조금 편리한 측면만 강조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부활 성야 미사를 봉헌하면서
무엇보다 함께 하지 못하는 신자분들을 기억하고
모두 건강하시길 기도 드렸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닫힌 무덤 안에 있는 셈이지만
부활과 더불어 빈 무덤이 될 날도 멀지 않았기를 기도했습니다.
행복하고 소중한 부활을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