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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tholic.or.kr/누구를 위한 성직자 유학인가?

[교회는 누구인가-김유철]
                                                        2010년 9월 30일 (목)  김유철  sk0770@hanmail.net

교회는 껍질을 벗어야 하는 갑각류

천주교회에서 평신도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다. 신앙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전례행위 혹은 신학분야일 경우는 말할 여지조차 없다. 물론 그런 분야를 굳이 평신도들이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비를 들여가며 국내외에서 어렵게 공부한 소수의 평신도 신학 전공자들마저 발 디딜 여지를 주지 않는 현실이 누구나 아는 한국천주교회의 현주소이다.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이 말한 것처럼 “산다는 것은 변하는 것이고 완전해진다는 것은 자주 변화하는 것”이다. 교회의 변화를 공의회 언어로 ‘쇄신’이라 한다면 교회가 살고, 완전을 지향하는 유일한 길은 변화 즉 쇄신인 것이다. 특별히 천주교회의 핵심이라 할 전례와 성사에 대한 수천 년 혹은 수백 년 묵은 것의 답습이 아니라 시대징표에 적응하고 적용되는 끊임없는 쇄신의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 교회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말로 표현하자면 “교회는 갑각류와 같아서, 주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껍질을 벗어 던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한국천주교회는 평신도 신학전공자들에 대한 외면과는 달리 이런저런 이유로 특별히(?) 선발된 성직자 혹은 신학생들의 유학공부를 주선하고 있다. 교황청이 있는 로마를 비롯해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등에서 공부를 한 후 학위를 받아 온 사람도 있고, 적당히 공부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으며, 현지에서 서품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직자들의 유학은 무슨 목적일까? 유학을 다녀온 성직자는 귀국하여 본당으로 부임하기도 하고 신학교에서 후배양성의 소임을 맡기도 한다. 과연 유학을 다녀온 성직자들은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일까?
        

1997년 7월 2일 사건

그동안 한국천주교회에 수많은 유학파-새로운 파벌조장이 아니라 표현상 부르는 단어-가 있었지만 평신도에게 가장 가깝게 접근한 유학파 성직자는 아무래도 저술활동이 왕성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던 중 <1997년 7월 2일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하여 교회의 입이라고 할 수 있는 교계언론은 그때부터 현재까지 굳건히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건이었다. 이른바 정양모․ 서공석․ 이제민 신부에 대한 ‘사도좌 권고’이다. ‘사도좌’라 불리는 교황청의 ‘견해’를 교황대사가 한국교회에 전달을 했고 ‘견해’를 ‘엄명’으로 받아들인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1997년 7월 2일 회의를 한 후 <한국주교회의 회보> 100호에 결과를 공포했었다.

<일부 신학자들의 저술활동에 관한 사도좌 권고>
"한국인 신학자들의 저서와 기사(이제민 신부의 『교회-순결한 창녀』, 정양모 신부의 여러 학술회의 연설, 서공석 신부의 『사목』1997년 2월호 기사)에 보편교회와 개별교회의 관계, 여성과 사제직, 사제독신제, 복음화와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하여 가톨릭의 정통교리와 일치하지 않은 요소가 있다고 지적하여 사제양성을 비롯한 신학자들의 올바른 감독을 권고하는 사도좌의 견해를 전달한 교황대사의 서한을 검토하고, 앞으로 주교회의 간행물에는 이들의 글을 게재하지 않도록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세 신부는 모두 유럽에서 공부를 하였다. 정양모 신부는 파리 가톨릭대학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교부학, 신약성서학을, 서공석 신부는 파리 가톨릭대학교,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이제민 신부는 오스트리아 그랏츠 대학교와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기초신학을 전공한 후 학위를 받은 유학파 성직자들이다. 교회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박사신부들이다.

사도좌의 ‘견해’를 근거로 한 주교회의 결정(1997년 7월 2일사건) 이후 세 신학자들은 모두 몸담고 있던 학교(정양모․ 서공석 신부는 서강대학교, 이제민 신부는 광주 가톨릭대학교)에서 타의에 나와야했고 이후 정양모․ 서공석 신부는 은퇴를 했고, 이제민 신부는 현재 마산교구에서 본당신부로 지내고 있다. 잊을 만하면 <1997년 7월 2일 사건>을 재론하는 것은 두고두고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회에서 단순한 유학파가 아니라 ‘신학자’ 한 명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것도 평신도에게 어필될 수 있는 신학자 한 명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헤아린다면 <1997년 7월 2일 사건>은 한국천주교회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일인 것이다.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신학자를 기다린다

제도교회의, 제도교회에 의한, 제도교회를 위한 신학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위한 신학이 될 수는 없을까? 묵은 것은 묵은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학문으로서 공부하고 그것을 해석해내는 것이 신학자들의 몫이다. 신학을 특별히 한국천주교회를 위한 ‘한국 신학’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한국천주교회에도 개신교의 안병무 박사나 변선환 박사처럼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신학자가 그립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세 신부의 신학계 ‘강제퇴장’은 아쉬운 일이었다. 학문연구가 전부인 학자에게 본당사목을 시키는 일은 적재적소에 맞지 않는 인사권의 전행이며 인력의 낭비이기도 하다. 본당사목이 하위계급이란 말이 아니라 각자의 몫이 다르다라는 말이다.

예전에 비하면 각 교구마다 수많은 해외유학파 성직자들이 즐비하다. 그들에 의해서 교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한다. 외국 신학자들이 제기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성사,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생활 (때로는 그 이상)을 하는 신자들을 위한 다양한 접근과 전례, 수도자가 아님에도 홀로 살길 결심한 사람들을 위한 적극적 해석, 재혼을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과부와 홀아비를 위한 예식이 전례와 성사에 대한 일부라면 신자본주의에 대한 교회의 관심, 새로운 지배계급 출연에 대한 교회의 입장,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이해와 함께 교리교육, 토착신학, 여성신학 및 때때로 논란의 중심이 되는 계시 등에 대해서 보다 새롭고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일을 포함한 시대의 다양한 도전 앞에 필요한 것이 신학자들의 눈 깊은 방향설정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성직자 유학인가?

정양모 신부는 2010년 <기쁨과 희망> 5호에서 시대를 앞서갔던 선배 신학자들에 비해 자신을 포함한 후배 신학자들이 “지능도 용기도 많아 모자란다”(152쪽)고 겸손해 했지만, 현재 일선에서 활동 중인 유학파 성직자들은 그들이 접한 새로운 학문을 어떤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본당에서 혹은 신학교 등에서 나름의 소임을 하겠지만 그것이 교회와 평신도들의 종교생활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유학파 성직자가 모두 신학자가 될 수는 없지만 그들도 그들의 몫이 있을 것이다. 성직자들이 보다 깊은 학문을 위하여 유학 가는 것은 장려하고 도울 일이지만 그것이 선택받은 자들의 유유상종이나 외국신학의 단순한 수입, 고위 성직자 육성과정의 방편 등으로 활용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성직자 유학인가?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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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2010.10.10 08:12

    구약의 예언자들 그리고 신비가 마이스터 ㅇㅔㅋ하르트와
    같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늘 그래왔고 또 그래야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