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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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08:55

봄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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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이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안뜰에 
작은 꽃밭을 일구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손에 쥐면 금방 날아갈 듯한 
가벼운 꽃씨들을 
조심스레 다루면서
흙냄새 가득한 꽃밭에 
고운 마음으로 
고운 꽃씨를 뿌리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새들의 이야기를 해독해서
밝고 맑은 시를 쓰는 
새의 시인이 되고 싶다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고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이슬비를 맞고 싶다
 
어릴 적에 
항상 우산을 함께 쓰고 다니던 
소꼽동무를 불러내어
나란히 봄비를 맞으며 
봄비 같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싶다
 
꽃과 나무에 생기를 더해주고 
아기의 미소처럼 사랑스럽게
내 마음에 내리는 봄비, 
누가 내게 
봄에 낳은 여자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봄비' '단비'라고 하고 싶다.

                                <배경음악은 비발디의 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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