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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5 11:02

엄마와 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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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앵두
                                                                    글쓴이 : 그리움

아내랑 아들이랑 야외로 소풍을 갔다.
점심때 도시락을 풀었는데 준비해온 동그란 3단 찬합과 풍성한 음식을 보고 어린시절이 생각나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다. 논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산골오지였고
게다가 산등성이 산돌과 바위를 골라내 만든 조잡스런 계단식 밭에 보리나 조(좁쌀)를 심어 일년 때꺼리 농사를 짓던 빈촌이었던 게다. 봄이되면 우리 마을은 춘궁기로 곤란을 겪었다.
보리밥은 그나마 여유있는 사람 얘기였고 보통은 조밥을 먹었는데
그 좁쌀도 떨어져 갈때 쯤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계절은 호시절이라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앵두나무의 앵두는 빠알갛게 익어갔다.

우리집엔 초가집 뒷마당과 돌담 대문쪽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초등학교 3학년 쯤 였을게다. 그 해에는 나무가지가 끊어질만큼 많은 앵두가 열렸는데
어느날 아침 등교하는 나에게 엄마가 도시락을 주면서 오늘 도시락은 특별하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었다. 특별해봤자 꽁보리밥이겠거니 하고 점심때 도시락을 열었는데 도시락이 온통 빨간 앵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새 좁쌀도 떨어져 새벽같이 일어난 엄마가 땅에 떨어진 앵두를 주워 도시락을 쌌던 것이다.  창피했던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어 둔채로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리는 소리로 교실이 떠들석해지자 선생님이 다가 오셨다.
상황을 판단한 선생님은 "와 ~~~이 도시락 내꺼랑 바꿔먹자!  정말 맛있겠다!!!"라며 동그란 3단 찬합도시락을 건네셨다.  1단에는 고등어조림, 2단에는 계란말이 그리고 여러가지 반찬과 쌀밥!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게걸스럽게 도시락을 비웠다. 창피함보다는 생전보도 듣도 못한 음식의 유혹이 더 컸으리라!
먹으면서 왜 그럽게 눈물이 나던지.........선생님께서도 앵두를 하나 남김없이 드셨다.
도시락을 다 먹고 나서 분위기를 다시 깨달은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날 집에 와서 도시락을 내던지며 엄마에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왜 창피를 줘?" 엉엉 울면서 투정을 해댔지만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를 했다. "그래도 그 앵두 다 먹었네!"
나는 엄마가 밉고 신세가 서러워서 저녁 내내 울다 잠이들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문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내 도시락을 씻던 엄마는 옷고름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이셨다. 울고 계신것이었다.
찢어지는 가난에 삶이 미치도록 괴로워도 그 내색을 자식에게 보이지 않으시려고 울음마저 맘껏 울지 못하셨으니 그 한이 오죽하셨을까?
자식에게 앵두도시락을 싸줄 형편에 당신은 그 앵두라도 배불리 드셨겠는가?
자기는 굶어도 자식은 굶기지 않겠다고 새벽찬바람에 앵두를 주웠을 엄마의 맘을 티클만큼도 헤아릴 수 없는 나이였으니........그 일은 두고 두고 내 가슴속의 한이 되어버렸다.

삶의 무게가 너무 힘드셨을까? 그 해 몇해 후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셨다.
지겹도록 괴롭히던 가난과 가시밭 삶에서 해방이 되셨으니 소쩍새 울음따라 홀연히 떠나버리신 엄마는 오히려 그게 더 행복이셨는지 모른다. 엄마는 가끔씩 나에게 장난처럼 물으셨다.
"우리 강아지 나중에 크면 엄마 쌀밥에 소고기국 사줄거야 아니면 보리밥에 된장국 사줄거야?"
그러면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쌀밥에 소고기국!"대답했고 그러면 엄마는 뭐가 그리 좋으신지 연신 함박웃음을 짓곤 하셨다.

이제 내 나이 마흔이 되었고 그때 나만한 아들을 키우는 나이가 되었다.
쌀밥에 소고기국이 지천인 세상이고 그 정도 음식은 서민들도 다 먹는 세상이 되었건만 그토록 먹고 싶어하셨던 엄마는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너무나 서럽고 눈물이 난다.
어떤 종교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 지옥에 간다지만 세상엔 예외란게 있으니 우리 엄마는 꼭 천국에서 뵙고싶다. 천국에는 진수성찬이 산더미같이 있겠지만 그래도 꼭 내가 지은 쌀밥과 소고기국을 차려드리고 싶다. 그러면서 엄마가 밥한톨 국물 한수저까지 남김없이 맛나게 드시는 모습을 옆에서 한없이 한없이 지켜봐야지

반찬투정을 부리는 아들에게 억지로 먹이는 아내나
음식이 없이 앵두라도 먹이려 했던 돌아가신 엄마나  자식 사랑은 매 한가지겠지만
돌아가신 엄마의 사랑을 생각하면 왜 이렇게 한스럽고 눈물이 나는 것인지?

밥은 고사하고 물려준 재산이 없다고 행패 부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쌀밥에 소고기국을 드실 엄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데........
오늘이라도 엄마에게 고백들 하시기를
'엄마! 나 엄마의 아들인 것이 감사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키워주신 것,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계신 것 감사해요!'라고 말이다.

『덧붙임』
찌든 가난 탓에 도시락도 제대로 싸지 못했던 내 어린시절도 함께 겹처지면서
눈물로 미소 짓게 만드는 감동의 글입니다.

지금은 가축 사료로 쓰는 밀기울 그것으로 죽을 끓여 끼니를 때우곤 했죠.
가끔씩 당원을 넣어 떡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떡 같지도 않다고 해서 그걸 개떡이라고 불렀지만
어린 내게는 더 할 나위 없는 별식이었습니다.

겨울, 교실의 석탄난로 위에는 아이들 도시락이 가득 쌓여있었지요.
맨 밑에 놓인 도시락은 눌어붙어 타거나 누룽지가 절반이었지만
그래도 김이 솔솔 나는 그들의 점심이 내게는 그리도 부러운 장면이었습니다.

나는 도시락이 없어서 밥그릇에 보리밥을 담아왔었거든요.
어린 시절 장난감보다도 더 욕심이 났던 것은 바로 네모 반듯한 그것도 얇은 도시락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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