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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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2 08:38

함부르크를 떠나면서

조회 수 1927 추천 수 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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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를 떠나면서

이제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왔나보군요.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밤 같은 밤을 느끼면서 함부르크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라는 세월 속으로 접어들었군요.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매 주일 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사제관 친교실에서 매일 미사를 올릴 때, 성지순례 때, 본당의 날 때, 배구대회 때, 피정 때 함께 했던 한분 한분의 얼굴이 이 글을 쓰는 지금 정겹게 제 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제가 함부르크 공동체에 사랑을 느끼고 정이 들었다는 것은 외지 사람들로부터 “함부르크에서 고생이 많으시지요?” 라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제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할 것입니다. 그리움과 사랑과 상처가 한데 만나고 있는 함부르크는 제가 교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며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고민하며 교회를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곳 함부르크에 머물러 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심정은 저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의 여러분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서로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이 공동체 덕분이 아닙니까? 이 공동체의 아픔은 여러분들의 아픔이었으며 이 공동체의 운명은 여러분의 운명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여러분의 운명도 이 공동체의 운명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 머물지 말고 그 때 있었던 일이 바로 오늘의 여러분을 있게 한 기회였음을 상기시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 주시길 빕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준 만큼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 소극적으로 시간을 떼우다 떠나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이야말로 우리 본당의 미래라고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들과 함께 뛰면서 생활하는 프로그램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 것도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말이나 생각으로 그런 걱정 하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가호호 방문을 하면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심심 단체도 열심히 방문하면서 정도 나누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모든 것을 침체시켜 놓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다행히 새로 오시는 신부님은 젊고 힘도 있으시니 열심히 맨발로 뛰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넣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함부르크 본당은 신부님께서 주임신부로서 사목하시게 될 첫 본당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과 첫 사랑이 무르익을 본당인 것입니다. 교포사목 나오기를 꺼려하는 요즘에 용기를 가지고 여러분께 다가오시는 신부님께 힘과 용기를 불어 넣으시어 첫사랑을 아주 진하게 느끼게 하여 주십시오.

떠나면서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이것은 물론 한국에 계시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 일치를 위한 노력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일치를 많이 강조하셨더군요(요한복음 17장). 제가 여기서 말하는 일치는 자기 뜻에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이 남에게로 다가가며 하나가 되는 일치입니다. 화해와 용서, 남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랑은 이런 일치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일치는 우리가 남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회합이나 대화를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할 때가 생기지요. 그럴 땐 남의 말도 들려오지 않지요. 남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는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을 수 뿐더러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는 회합은 서로를 무시하는 언쟁의 장소가 되기 마련이고, 본당을 위한 발언은 구실일 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교회를 위한 발언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모순이며 마음 아픈 일입니다.

함부르크 본당이 성령강림 본당인 만큼 우리 모두는 성령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남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제는 자매의 언어로, 자매는 형제의 언어로, 신부는 신자들의 언어로 신자는 신부의 언어로, 집안에서 남편은 아내의 언어로, 아내는 남편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이런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어쩌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내게 영원히 상처를 준 사람으로 머무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신자 수가 많지 않다 보니 모두가 협력을 해야 하는데 때로는 임원으로 선출된 분들에게만 모든 짐을 지운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임원을 하지 않으려고 발뺌을 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하지요. 그런 그들을 희생과 봉사를 강조하며 임원으로 선출해놓고는 뒤에서 잘하니 못하니 따지며 공격을 할 때는 -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 너무 unfair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제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봉사할 때 함부르크는 영원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매주 주말에 지방 공동체를 가는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브레멘, 오스나부뤽, 하노버, 오슬로, 덴마크의 공동체 분위기는 각각 다르면서도 제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주었습니다.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신 한 분 한 분의 마음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미사 후에 가진 친교의 시간들도 저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노버 공동체는 제가 부임하여 처음 방문할 때부터 끊임없이 제게 시비와 언쟁을 걸어온 곳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시비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계속되었지요. 하지만 하노버는 분쟁이 있는 곳에는 일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다른’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곳이기도 합니다.

함부르크에 있는 동안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조금의 폐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제 머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2 고린 11,9) 특히 금전 면에 있어서 본당의 돈은 한 푼도 제 개인을 위해 쓰이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폐를 많이 끼치고 여러분들의 마음에 상처도 많이 주었을 것입니다.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떠나면서 겸허하게 용서를 청합니다.

제가 함부르크에 도착하기 전부터 한국으로 제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며 함부르크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애써 주신 김치수 회장님, 묵묵히 온 몸으로 봉사하신 김부남 회장님, 점점 어려워지는 본당을 위해 희생정신으로 뛰어든 남궁춘배 회장님, 제가 굶을까 싶어 열심히 부식을 조달해주신 박 말찌나 여성 부회장님과 여러 자매님들, 그리고 제게 위로와 사랑의 말을 던지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모든 형제자매님들, 그동안 저 때문에 수고들 너무 많이 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열심히 뛰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때로는 상처가 된 마음에서, 조국에 대한 사랑을 보고 갑니다. 교회와 형제자매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면서 갑니다. 저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제 마음에 깊이 심으며 갑니다. 함부르크 본당이 영원하기를 빌면서 갑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주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음을 느끼시기를 빕니다.

함부르크의 홈페이지도 제게는 좋은 추억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함부르크를 떠나더라도 가끔씩 들리겠습니다.

이제민 드림
  • ?
    그냥 팬 2005.07.03 00:48
    에구나, 신부님 함부르크를 떠나시는군요.
    저는 서울에 살고, 신부님을 한번도 뵌 적이 없는데
    글로나마 처음 뵙게 된 곳이 이곳 홈페이지라
    떠나신다니 저도 섭섭합니다.
    고별사가 눈물나게 하네요... ㅠㅠ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시나요???

    신부님 개인 홈페이지에서 계속 만나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어디에 가시든 착하고 좋은 목자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 ?
    한 신자 2005.07.04 11:42
    가끔 이곳에 들어왔던 신자입니다
    떠나시면서 남기신 글을 대하니 마음이 뭉클하니 눈물이 납니다
    그곳 함부르크신자들은 참 복이 많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공동체에도 오셔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함을 가져봅니다

    영적향기 나누어주시는 신부님께 존경과 감사드리며
    언제 어디서나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
    조유진 2005.07.05 01:08
    안녕하세요, 저 도미니카입니다.
    진즉에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신부님 떠나신다는 것을 안 다음에야 소식을 전하게 되었네요.
    한동안 컴퓨터와 담을 쌓고 살았는데 오늘 왠지 아침 일찍부터 컴퓨터 전원을 켜고 만남 홈페이지를 들어왔는데요, 이런 슬프고도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네요.

    저는 비록 한국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저의 영적 고향은 함부르크 한인성당입니다. 그 중심은 물론 이제민 신부님이구요. 그 고향의 중심이 더이상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슬프지만 한국에 돌아오셔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뵐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암튼 마무리 잘 하시고 돌아오시면 빨리 뵐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 ?
    이 토마스 모어 2005.07.06 05:20
    신부님 그동안 타향에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함부르크 사목을 위해서 신부님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빕니다.
  • ?
    헬레나 2005.07.11 12:56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홈페이지 방문했습니다.
    이제 가신다니 서운하군요.
    어디든지 가셔서 건강하게 지내시구요,
    곧 독일로 출발예정입니다.
    빨리 뵈었으면 하네요.
    항상 건강하시구,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빕니다.
  • ?
    박상운 2005.07.12 07:28
    Ruhr 본당 박상운 신부입니다.
    독일의 한인 사목자, 우리의 영원한 형님 신부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수고하셨습니다.
    남아 있는 저희도 신부님과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공동체를 사랑하시는 그 열정과 말씀을 생각하면서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신부님, 형님 잘 가시고 건강하시고
    뜻깊은 안식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에쎈에서 막내 박신부 드립니다.
  • ?
    김원자 2005.07.15 22:00


    이제민신부님!

    그동안 수고 마느셨읍니다. 한국에 가셔서도 항상 건강하세요.


  • ?
    서정혁 2005.07.15 22:06
    사랑하는 나의 친구신부여,
    함부르크를 떠날 때 까지 성실히 교회를 사랑하며 사목에 전념하고 있는 너를 보면서 부러움과 자랑을 느끼게 되는구나.
    우리의 삶은 늘 십자가를 짊어지시며 골고타를 향하여 묵묵히 외롭고 고독하게 걸어가는 길, 누구의 위안도 사랑도 인정도 아닌 침묵 속에서 우리를 보시는 아버지의 고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길. 이제 함부르크를 떠나는 너에게 주님은 또 말씀하시는구나. "떠나라! 내가 일러 준 땅을 찾아가라!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
    친구여, 사랑은 늘 하느님을 향하여 묵묵히 매일 떠나고. 그 분 안에서 행복을 찾고 있단다. 고국에서 만나자! 사랑한다! 하는 땅 땅 만큼이나......!!!
  • ?
    클라라 2005.07.20 00:10
    헤어짐은 항상 아쉬움을 갖게 하나봅니다.
    제가 신부님 홈피 드나든게 함붉에 계실 때니
    이젠 그 곳 떠나 한국으로 오시면 더 가까이
    계실터인데도 헤어짐이란 단어가 앞서니
    주제넘게도 아쉬운 마음입니다.
    고국으로 오시면 서울쪽으로
    강연 오시는 일도 있으실 터
    아무래도 신부님 뵐 확률이 높겠지요.
    가톨릭에 희망을 갖게 해주신 신부님
    뵐수 있는 날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
    덴마크 공동체 2005.07.25 18:45
    목자없는 공동체라고 바쁘고 힘드신대도 이렇듯 찿아주신일 저희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거에요.미사때들려주신말씀 잊지않고 지키도록 노력하겠읍니다.신부님을 자주 모실수는 없었지만 저희들은 신부님과 장장 5일동안 함께할수있었으니 5일 곱하기 24시간은 60시간이니 다른공동체 보다도 더많은 시간을 할애 하셨네요.신부님 감사합니다. 너무 저희들 걱정하지마세요.열심히 노력할께요. 저희들 멀리서지만 항상 신부님의안녕을 기도합니다.글솜씨가 없어 감사한 마음을 다 전할수없어 망설이다 이글을 드립니다.
  • ?
    덴마크 공동체 2005.07.25 18:52
    신부님
    산수법이 잘못 돼었네요.5곱하기 24는 120시간입니다.신부님의 건강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