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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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가본 성지순례


"어둠에서 빛이 비쳐 오너라" 하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마음속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1고린 4,6)
창조주이신 하느님 아버지, 신앙의 선조들에게 비추어 주셨던 그 빛을 밤처럼 어두운 제 마음속에도 비추어주십시오. 어둡기만 한 제 마음은 자신을 올바로 자각하지도 못하고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찾아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똑히 보고 싶으면서도 볼 수 없는 태생 소경처럼 어둠에 쌓여 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말씀(2고린 4,6)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 주님께서 제 마음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주시길 간절히 청하면서 순례를 떠났습니다.

갓 태어난 초대 그리스도교가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전파되어 가는지 사도행전을 감명 깊게 읽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곳,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하시면서 복음 때문에 해산의 고통이 무섭게 꿈틀거리던 거룩한 땅에 이제 실제로 간다고 생각하니 제 마음은 마치 그리던 고향이라도 찾아가는 듯 기쁨으로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이방인인 우리에겐 특별히 고맙기 그지없는 사랑하는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나설 수 있는 크신 은총 베풀어주신 주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순례 1일
드디어 기다리던 2004년 10월 11일. 우리 순례단 45명은 함부르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향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스탄불에 저녁 늦게 도착하여 그곳에서 하룻밤 자고, 그 이튿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아다나로 갔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우리는 버스를 타고 우리 순례의 첫 출발지가 될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향하였습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광활한 하란 광야를 보면서 우리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생각했습니다. 터키는 우리 남한보다 약 8배나 큰 땅이며 흑해, 에게해, 지중해, 마르마라 바다로 둘러싸인 너무나 아름다운 땅이기에 이곳은 에덴동산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고 합니다.

순례 2일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너무도 중요하고 잘 알고 있는 곳이기 때문인지 전혀 낯설지 않고 정답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교회의 모습조차 볼 수 없지만 바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던 공동체가 있었으며,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도께서 함께 손잡고 교우들을 보살피셨던 곳이며, 성령의 역사가 강했고, 1, 2, 3차 전도여행의 출발지였던 곳이기에 우리에겐 너무나 중요하고 뜻 깊은 곳에 이렇게 실제로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감격스럽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먼지 나는 시골길을 걸어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니 조그만 동굴 같은 베드로 석굴성당이 옛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어둡고 좁은 이 속에서 초대교인들이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곳으로 돌로 된 제대가 있었고 제대 위 벽에는 베드로 사도의 석상이 있었습니다. 제대 옆에는 위험시 도망갈 수 있는 작은 도피굴이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여다보니 겨우 한 사람 기어나갈 수 있게 동그랗게 뚫린 길이 보였습니다. 언제 적들이 침입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드리는 성찬의 전례는 얼마나 뜨겁고 애절하였을까 생각하면서 그들이 미사를 드리던 제단 위에 손을 얹어놓고 사도를 모시고 미사를 드리던 초대교인들의 경건한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메르신 해변가의 호텔에 묵으면서 바로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와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의 남새를 기분 좋게 맡으면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순례 3일
우리는 사도의 고향인 다르소에 왔습니다. 사도께서 태어나신 집터 위에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손에 물을 적시며 감개무량했습니다.
사도여! 이곳은 당신이 태어나 자라신 곳이기에 당신께 큰 애정을 품고 있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귀중한 삶을 복음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당신이 치르신 그 크신 고통의 대가로 지금 우리들이 이곳에 이렇게 와 있습니다. 당신께 깊은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다르소! 또한 이곳은 당신이 다마스커스에서 주님을 뵈옵고 회심하신 후 크나큰 열정을 품으시고 예루살렘에 가셨지만 그곳 공동체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픔을 안고 이곳으로 돌아오셔서 8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깊은 고독과 번민 속에 괴로워하시며 지내셔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여, 당신은 이곳에서 그 무서운 고독과 번민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얼마나한 환멸과 쓰라림을 맛보셔야 했습니까? 아무런 전망도 보이지 않는 초라한 다르소의 시골구석에서 홀로 내버려지신 채 다마스커스에서의 사건과 나를 일꾼으로 삼으시겠다던 말씀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셨겠지요. 어느 날 주님께서 바르나바를 통해 당신을 부르실 때까지...
사도여,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 안에서 이루신 업적을 알게 됨으로서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계획에 대해서도 알게 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이곳에 왔습니다. 어려운 시련의 순간에 무슨 일이 자신에게 생겼는지 모른 채 어리둥절해 있을 때도 주님은 당신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자비로이 이끌어주셨듯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자비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겨우 견디어내는 시련의 순간들이 바로 우리에 대한 주님의 계획의 때임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특별히 순례 중에 있는 저희와 함께 하여주십시오.
우리는 근처에 있는 클레오파트라 성문에도 가보았습니다. 사도께서 수없이 지나다니셨을 성문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스럽고 친절한 땅이라는 갑바도기아를 향해 떠났습니다. 사도께서 넘으셨던 험난한 산을 우리는 이처럼 편히 앉아서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걸어서 넘으셔야 했던 이 길은 그분께 얼마나 멀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 도적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가슴에 타오르는 전도의 열정을 가득히 품어 안고 이 길을 걸어가시던 사도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분의 그 뜨거운 사랑의 마음 가슴 깊이 느껴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람으로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필립 1,8)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하지 않겠습니까?"(2고린 11, 29)
"나의 자녀인 여러분,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습니다."
라고 하신 사도의 말씀들을 생각하니 교우들에 대한 사랑과 염려를 놓지 못하시던 사도의 마음 다시금 깊이 느껴집니다.
바오로 사도여, 진정 당신은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형성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무섭도록 겪으셔야 하셨습니다.
나는 감옥에도 수없이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돌에 맞아 죽을 뻔 했고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도의 위험, 광야의 위험, 동족의 위험, 노동과 고욕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2고린 11,22) 라고 고린토인들에게 당신이 겪으신 고통들을 친히 써서 보내셨습니다.
에페소의 장로들께 고별인사를 하실 때는 "나는 눈물을 머금고 온갖 굴욕을 참아가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여, 당신이 치르신 이 모든 고통들은 큰일을 위한 밑거름이었고 부활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이 땅을 떠나시고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당신은 당신의 위대한 업적들과 우리에게 남겨주신 너무나 소중한 서간의 말씀들을 통해 지금도 우리 안에 생생히 살아계시고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면서 날마다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주님께로 이끌어 주십니다. 사도여 당신께 감사와 사랑을 드리옵니다.
그후 우리는 3시간가량이나 달려서 갑바도기아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끝없이 계속되는 광활한 광야와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화산성 응회암이 바람과 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갖가지 모습을 갖추고 산을 가득 채운 바위들의 모습은 표현할 길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돌바위산을 바라보면서 우리 순례단은 드디어 데린쿠유라는 거대한 지하동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이 무서운 핍박을 피해 오셔서 300 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숨어서 사시던 지하도시입니다.
이 동굴을 보면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살았습니다" 라고 하신 히브리서의 말씀이 더욱 실감났습니다.(히브 11,38)
지하동굴로 내려가는 길은 너무나 좁고 낮아서 우리 45명은 한 줄로 쭉 서서 허리도 못 펴고 구부린 채 어두운 땅속을 향해 깊이깊이 내려가야 했습니다. 다른 순례객까지 함께 하여 앞뒤로 꼼짝할 수 없이 길이 꽉 막혀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도록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평소 갖고 있는 폐쇄공포증 때문에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힘을 다해 함께 갔습니다. 점점 깊이 좁디좁은 꼬불꼬불한 길을 내려갈수록 무서움으로 가슴이 쪼이고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아 무척 괴로웠습니다. 금시 심장이 멎는 것 같아 "공포 중에 평화이신 하느님의 자비심이여 제가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라고 속으로 부르짖으면서 식은땀을 흘리며 투쟁해야 했습니다.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끝까지 견딜 수 있게 해주신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제 옆에 계셔 주셨던 신부님 자매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외적의 침입시 입구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맷돌 모양의 큰 돌이 놓여 있었습니다. 환기통을 12층 높이까지 뚫고 여러 갈래로 땅굴을 파고 들어갔으며, 층들을 지상과 연결하기 위해 복잡한 터널과 계단들을 만들어 놓았고 3만 명이나 살수 있는 거대한 지하도시로 지금도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 벽을 파서 침대로 사용했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와 세례 받던 장소가 있었던 곳도 보았습니다.
신앙을 지키고 일편단심 주님만을 섬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고 스스로 이런 고생스런 곳에서 일생을 두더지처럼 가난하게 살다 가신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이여! 이제 당신들은 떠나시고 이곳에 안 계시지만, 이 좁고 어둡고 차가운 동굴이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우리는 비록 박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 믿음의 정신과 마음만은 이어받아 간직했어야 하거늘 당신 앞에 서 있는 오늘 우리의 모습은 몸과 마음으로 너무나 부유하여 진정 부끄러울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조차 개인적인 명성을 높이려 하면서 교회 안에서까지 권력을 다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왕국을 얻어주시려고 저같은 모욕을 참아 견디신 주님을 허무한 명예 따위로 본받으려는 것입니까?" 라고 말씀하셨던 데레사 성녀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유혹에 빠지려는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이여, 당신들은 지금 주님 곁에서 영원한 천상 행복을 누리고 계시오니, 아직 수많은 유혹과 구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기쓰며 살아가야 하는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밖으로 올라오는 길은 더욱 좁고 낮아서 우리는 반은 앉은 것 같은 엉거주춤한 모습을 한 채 한 줄로 기다시피 나와야 했기에 키가 크고 뚱뚱한 사람은 더욱 힘이 들어 절절매면서 올라가던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은 웃음이 터져 나오기까지 합니다.(어떤 자매님 생각을 하면서.) 그때는 그렇게 무서웠건만... 그 자매님은 올라올 때 너무나 허리가 아파서 울면서 올라와야 했고 그날 저녁에는 침을 맞아야 했답니다.

순례 4일
우리는 드디어 갑바도기아의 괴뢰메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타우루스 산맥의 북쪽 고원지대여서 그런지 기후가 몹시 쌀쌀하여 여름옷만 입은 우리들은 추워서 떨면서 바위를 파서 만든 집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돌집으로 가득 찬 산을 보면서 돌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이곳은 바실리우스 주교(329-379년)가 그 시대에 유행했던 은둔생활의 개별화를 막기 위해 이곳에 365개의 수도원을 설립했는데 지금은 그 중 30개의 성당만이 야외 박물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입구와 몇 개의 통풍 및 채광장치를 위한 구멍만이 있어 외부에서 보면 인간이 거주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기에 괴뢰메라는 '감추어진' '볼 수 없는'이란 뜻의 이름을 갖게 되었나봅니다.
초라한 굴 속 같은 성당에 들어가 보니 어둡고 좁은 벽에 너무나 아름다운 이콘 성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일대기, 천사들과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에말러성당(사과성당) 중앙에는 세계에서 가장 밝은 모습을 하고 계신 예수님께서 의자에 앉아 계시고 예수님 양 옆에는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이 허리를 깊이 숙이고 무언가 간청하고 계신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면 이 죄악에 물든 세상을 멸망에서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고 계신 성모님을 보면서 우리를 위해 언제나 기도하고 계신 우리의 전구자이신 성모님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 속 같이 생긴 차르클러 성당에는 수도자들이 사용하던 돌로 된 긴 식탁과 의자가 놓여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치사르 계곡에는 비둘기집이 많은데 집을 짓지 못하고 헤매던 비둘기들을 위하여 지어준 것입니다. 깊은 계곡의 절벽 꼭대기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통신 역할을 해주었고, 낳아준 비둘기 알로는 석굴을 성화로 장식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주었습니다. 한때 이 땅에서 이처럼 꽃을 피우던 그리스도교의 영성이 다 사라져 없어지고 이제는 애석하게도 이 빈 수도원과 성당에 관광객만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디 영원으로부터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이루시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소서.
우리는 운치 있게 돌을 파서 만든 동굴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나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돌집들이 마치 하나의 시를 이루고 서 있는 경치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각 조별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차창으로 보이는 여러 모양을 갖춘 돌바위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어떤 바위들은 버섯모양을 갖추고 한곳에 모두 모여 있었고 모자를 쓴 보안관 모습을 한 바위도 있었으며, 저 멀리에는 성모님 상 바위도 보였습니다. 어떻게 천연으로 이런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 하면서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여러 모양을 갖춘 돌바위산을 바라보며 서 있노라니 다시금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계속 달려서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던 험난한 산, 사도께서 걸어서 넘으셨던 산을 넘어 터키에서 2번째로 큰 평야인(콘야평야) 이고니온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고니온, 이곳은 사도께서 1차 전도여행시 오셨던 곳이며, 회당에서 설교하시는 사도의 말씀을 듣고 수많은 이방인과 유다인들이 신도가 되었지만 악의를 품고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받으시고 돌아 맞아 죽을 뻔하셨던 곳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에게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행하게 하셔서 하느님의 은총에 관하여 그들이 전하는 말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습니다."(사도 14,3)
사도께서는 학대를 받으시고 이곳을 떠나 리스트라와 데르베로 가셨습니다.

순례 5일
우리는 이고니온 호텔에서 아침미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그날은 10월 15일. 대 데레사 성녀의 축일이었습니다. 이 순례 중에 제가 특별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녀의 축일을 지내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마치 성녀께서 저를 동행해주신 것만큼이나 반가웠습니다.
사랑하는 길, 기도하는 길을 몸소 걸으시고 가르치신 성교회의 학자이시면서도 너무도 겸손하신 분, 성녀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꾸밈없고 소박하면서도 생동감 넘치시는 주옥같은 성녀의 말씀들은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감동을 안겨주시는지요. 주님이 사랑을 실감 있게 깨우쳐 주시고 우리를 격려해 주시면서 힘 있게 우리를 살아계신 주님께로 이끌어주십니다.
성녀여 당신은 이 지상에 계실 때 숱한 영혼들 중 단 한 명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이라도 목숨을 내놓고 싶다 하시면서 "하지만 나같이 못난 여자의 몸으로는 님을 섬긴다는 것은 마음뿐"이라면서 한탄하셨나이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위대한 사업을 하셨던가요? 어느 대장부 못지않게 당신은 온갖 반대와 학대를 받으시면서도 중세기의 쓰러져가는 가르멜의 영성에 새로운 불꽃이 타오르게 하시며 15개의 봉쇄 수도원을 창립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저서들은 너무도 사랑스러워 항상 몸에 지니고 싶어 이곳까지 당신을 모시는 것처럼 가방에 챙겨 갖고 왔습니다.
성녀여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당신은 영혼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많은 진보를 할 수 있도록, 내 힘이 자라는 데까지 돕고 싶은 마음과 사랑이야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하셨사오니, 부디 저를 도와주시어 제 영혼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합당하게 찬미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미사를 드린 후 우리는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를 향하여 떠나 그곳에 낮 12시경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엉겅퀴와 잡초가 무성히 자란 벌판을 걸어갔습니다. 오랜만에 번잡한 도시의 소음을 벗어난 우리는 마치 고향마을에라도 온 듯했습니다. 한참 걷다보니 잡초가 수북이 쌓인 벌판에 큰 돌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그곳이 유다인의 회당이 있던 자리였고, 그 돌은 제단이었습니다. 돌 제단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고 십자가 양편에는 양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제단 옆에 서 있노라니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열렬한 설교를 하시던 사도의 모습이 떠올라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사도 13,14-15)
바오로 사도여, 당신은 바르나바와 함께 이곳 회당에 오셔서 앉아 계셨지요. 그 때 이곳 회당의 간부들이 당신들께 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 권하자 당신은 기다리고 계시던 차 바로 이 자리에 서서 열렬히 복음을 선포하셨지요. 당신 서 계시던 바로 이 자리에 저도 이렇게 서 있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말씀을 들은 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그런 말씀을 더 들려달라고 당신께 간청하였지요. 당신은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이끄셨습니다. 반면 믿지 않는 반대자들에게서 욕설과 박해를 받으시고 이곳을 떠나가셔야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나는 너를 이방인의 빛으로 삼았으니 너는 땅 끝까지 구원의 등불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안으시고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로 떠나가셨습니다.
당신이 치르셨던 피땀과 수고로 주님의 말씀은 이처럼 성취되어 이방인인 우리들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이렇게 이곳에 와서 당신을 추모하여 서 있습니다. 당신이 서 계셨던 이 자리를 그냥 떠나기 아쉬워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조그만 돌멩이 하나를 위험을 무릅쓰고 갖고 왔습니다.(공항에서 걸리면 유치장감이 된다는 위험.)
그 다음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고 또다시 안탈리아를 향해 떠났습니다. 차창으로는 사과나무 밭이 끝없이 보였고 농부들이 중간 중간 쌓아놓은 사과들은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던 차를 멈추게 하고 사과 한 상자를 사서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차창으로 계속 보이는 푸른 호수와(에게해) 호수 끝에 멀리 보이는 둥그런 산들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사도께서 끝없이 사나운 짐승들의 위험도 무릅쓰고 걸어가셔야 했던 척박한 산을 넘고 돌을 깎아 만든 굴속을 지나 거의 3시간 30분이나 버스를 달려 드디어 안탈리아에 도착하였습니다.

순례 6일
베르게. 이곳은 전도여행에 함께 동행했던 마르코가 사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곳. 그는 이곳에서 넘어야 할 산과 무서운 짐승들의 위험과 가는 곳마다 당해내야 하는 핍박이 무섭고 힘에 겨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곳에서 바르나바와 사도께서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가심으로서 제 1차 전도여행을 마치신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순례단은 폐허가 된 채 길에 즐비하게 서 있는 허물어진 성벽과 상가가 서 있던 자리를 보면서 돌로 만들어져 있는 도보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도보를 걸으면서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마르코 그분들이 걸어가셨던 발자국 위에 내 발도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짜릿한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목욕탕이 있었던 곳에는 아직도 열탕 온탕 냉탕이 나뉘어져 있던 흔적이 있고 바닥은 예쁜 타일이 깔려 있었습니다.
또한 반원형의 아스펜도스 극장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15000명이나 수용할 수 있었던 돌의자에 모여 앉아 맨 밑에 서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우리의 가이드가 불러주는 '거룩한 성'이라는 성가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마치 마이크를 통해 듣는 것처럼 또렷하고 크게 들을 수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 시대 사람들의 놀라운 지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형극장의 위치를 항상 산과 바다를 끼고 지어서 둥근 음파를 뒤편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파장을 멀리까지 실어 날라 퍼져나간 소리가 부딪쳐 되돌아오는 작용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후 우리는 사도께서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가시기 위해 배를 타고 가셨던 바다를 향해 갔습니다. 마치 서울의 명동 골목만큼이나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옛날 가옥들을 보면서 한참을 걸어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멀리 바라다 보이는 절벽들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바다 위에서 작은 배를 타고 마음껏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들 같이 행복해 했습니다.
아, 사도께서 활동하시던 땅과 바다는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지요. 덕분에 우리는 그분의 체취에 흠뻑 젖으면서 이런 호강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호강스럽게 유람을 하고 있는 이 바다에서 당신은 얼마나 고생스런 항해를 하셔야 했는지요. 동분서주 뛰어다니시며 교우들에 대한 생각에 꽉 차 계셨던 당신은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시기나 하셨는지요. 우리는 그날 바로 그 바다가 환히 바라다 보이는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아침저녁 베란다에 앉아 푸른 바다를 보면서 저 멀리 사도께서 배를 타고 가시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내일은 주일미사라 신자들의 기도문을 작성하기 위해 밤새 애썼습니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아...

순례 7일
이날 아침에 호텔에서 드리는 주일미사는 너무나 은혜로웠습니다. 때를 맞춘 듯 이곳에 와서부터 계속 듣게 되는 바오로의 서간 말씀들은 더욱더 실감 있고 친근하게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미사 중 청원기도를 원하는 사람마다 자유로 할 수 있었고 평화의 인사는 "당신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면서 서로 포옹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빌어주는 서로의 마음 때문에 우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미사 후 우리는 파묵칼레를 향해 떠났습니다. 정오쯤 이곳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살다호수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에 다시 떠나 드디어 오후 2시경 라오디케아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인가가 없는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산중턱에 폐허가 되어 있는 교회의 옛터가 보였습니다. 2층 건물이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요한묵시록의 7교회 중의 하나이며, 저자로부터 꾸지람은 받았지만 성령의 역사가 강했던 굉장한 교회였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영적으로는 가난했기에 "너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묵시 3,14-19). 열심히 노력하여 네 잘못을 뉘우치라는 권고를 받았던 교회입니다. 합동 세례식 받던 땅이 움푹 패어져 있었습니다.
그후 우리는 목화성이라는 뜻을 가진 파묵칼레(성서상의 히에라폴리스)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는 평민, 귀족, 영웅들의 묘지가 있어 수많은 돌로 된 관들이 길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차창으로 멀리 보이는 파묵칼레는 석회가 굳은 모습 때문에 마치 하얀 목화성 같이 보였습니다. 이곳에서는 골로사이 출신인 에바프라가 교회를 돌보느라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고 사도께서 에바프라의 동향인인 교우들에게 서신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골로 4,12-13). 수천 년을 두고 흘러내린 칼슘성분이 바위처럼 하얗게 층층 계단 모양을 이루어 천연욕조를 이루고 흐르는 물에 우리 순례단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 층층이 흐르는 물속을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로마시대에는 황제들도 즐겨 찾았던 이곳 온천수는 질병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어 우리 중 발에 무좀이 있는 사람은 치유를 기대해 보기도 했습니다. 물의 온도는 우황 온천물과 리커스 평야에서 흘러오는 차가운 물이 합쳐져서 기분 좋게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그 후 우리는 히에라폴리스라는 화려한 호텔에 묵었습니다. 이곳엔 천연 온천이 호텔 정원에 있고 수영장도 있어서 우리는 이곳에서 온천도 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 쌓였던 수면부족으로 온천을 할 기운조차 없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곳에 와서부터 지금껏 계속되는 불면으로 몹시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순례하는 때가 마침 이곳 이슬람교의 라마단 시기라 그들은 낮에는 금식을 하다가 해가 지면 밤새 먹고 노는지(?) 너무나 시끄러워 더욱 괴로웠습니다.
내일의 순례를 위해 제발 조금이라도 자야겠다고 아무리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 보아도 결국은 못 자고 아침이면 무겁고 지친 몸으로 일어나곤 하면서 하루하루 겨우 견디었는데 드디어 이 날은 완전히 침대에 쓰러져 저녁엔 식당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20 여년 만성으로 앓고 있는 병이 있어 다시 급성이 될까하여 속으로 걱정을 했는데 결국은 병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일은 어쩌면 이곳에 와서 제일 중요한 곳에 가게 되는 날인데 이렇게 열이 나고 아프니 눈앞이 캄캄하도록 절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번 수술을 받아야 했고 끊임없이 약을 복용하면서 제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아픈 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 왔기에 비록 지금 잠시도 쉬지 않고 쑤시는 통증(잇몸의 뼈가 부서지듯 족집게로 꽉 쪼여오는 아픔)으로 어깨와 등허리까지 쑤셔 숨도 쉴 수 없이 아프지만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어 하루하루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같이만 생각되어집니다. 건강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뼈아프게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괴롭고 원망스러웠던 병도 지금은 저에게 이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를 그 긴 세월 병으로 고생하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약함을 밑바닥까지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당신께로부터 받는 선물임을 알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주님, 당신은 저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픔 속에서 눈물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주셨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고, 당신을 간절히 찾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강, 힘, 시간, 마음까지 온전히 당신이 주셨나이다. 오직 주님만이 홀로 끝없는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라 고백하며 시편 저자와 한마음이 되어 주님께 아뢰옵니다. "그 많은 고생과 불행을 나에게 지워주셨어도, 당신은 나를 되살려 주시고 땅속 깊은 곳에서 끌어 내시리이다. 나를 장하게 키우시고 돌이켜 나를 위로하소서."(시편 71,20)
송곳으로 잇몸을 쑤셔오는 듯한 아픔으로 괴로워하면서 책을 읽던 어느 날 "도저히 치료받을 수 없는 쑤시는 아픔이었다. 짐승처럼 참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라는 토마스 머튼의 글을 읽다가 그만 소리내어 엉엉 울던 생각이 납니다. 절망스럽고 답답한 제 심정을 너무도 잘 표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의학이 발달한 이 나라에서 수술을 여섯 번씩이나 하면서도 나를 고쳐줄 수 없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잇몸의 무서운 통증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언제 나을 수 있다는 희망도 갖지 못한 채 코에서 고름은 계속 흐르고, 열이 나면 수술하고 항생제만 계속 복용해야 하는 상태에서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슬픔과 절망 속에서 당신께 제 마음의 눈을 향하게 해주시고 조금씩 당신 사랑에 눈뜨게 해주시어 아픔을 견디어낼 수 있는 용기와 힘주신 주님께 찬미 드리며 기도드립니다.
나를 위해 당신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게 한 사랑의 깊이로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나를 위해 기꺼이 견디신 그 고난들을 내 마음에 새겨 주소서. 그리하여 내가 그 고난을 우러러 새길 때 당신 사랑을 위해 내 고통을 받아들이며 나아가 그것을 열망하게 해 주소서.
아버지 이 작은 인간의 제물을 당신 아드님의 무한히 거룩하신 제물에 하나 되게 하소서. 그분의 것에 일치시켜 주소서. 아멘.

순례 8일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부터 마음속에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가게 되는 에페소! 많은 성도들의 체취가 가득한 거룩한 땅. 특히 요한 사도와 함께 성모님께서 사시던 곳이며 또한 돌아가시고 승천하신 성모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드디어 여행 8일째 간절히 고대하던 날이 되었습니다. 헌데 불행히도 전날 밤 너무나 아파서 한잠도 못 자고 아픈 몸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도저히 오늘의 순례를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성지인데 이렇게 아프고 기운 없는 자신이 너무도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에스델 왕후처럼(에스 4,16)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들고 있는 힘을 다해서 간신히 버스에 오르는데 마침 하시몬 형제님이 갖고 오신 카세트테이프에서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하는 성가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긴장했던 마음이 확 풀리면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크신 힘에 의지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니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새벽 7시 15분에 출발하여 4시간 30분이나 버스로 가야했습니다. 한참 가다 우리는 좁고 가파른 산길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성모님 생가가 가까워짐을 느끼니 기쁨으로 가슴이 마냥 설레었습니다. 마침 이날, 그동안 해오던 9일기도(54일간 드리는)가 끝나는 날이어서 고맙게도 성모님을 향해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드리는 제 마음은 너무나 감미로웠습니다. 오늘같이 뜻 깊은 이날 54일째 기도가 끝나는 것이 우연으로 돌리기엔 제겐 너무나 의미 있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날은 때때로 차갑고 굳은 마음을 의식하면서 드리게 되는 괴롭고 메마른 기도가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랑과 감사가 솟구치는 기도가 우러나왔습니다. 버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마음속 깊이 느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차가운 제 마음을 "하느님께서는 내 영혼의 메마름을 당신께 대한 말할 수 없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라고 하신 성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 왼편에 자그만 검은색의 성모상(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위해 검은색)이 우리들을 반겨주시는 듯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셨습니다.
생가는 작은 경당 같았고 초라했지만 너무나 아늑했습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고생하던 어린아이 그리던 엄마 품 찾아온 듯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저는 가이드의 설명도 듣지 않고 혼자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성모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천주의 성모여, 하례하나이다. 엎드려 절하나이다. 어머니 앞에 나오기엔 너무도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죄인이오나 어머니, 이 마음 다하여 드리는 찬미와 감사와 사랑을 받으옵소서."
저는 맨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의 모든 아픔을 알고 계시는 인자한 어머니 앞에 앉아있다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포근함을 느끼면서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모든 서러움, 또 사랑과 감사의 마음 복받쳐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린아이마냥 흐느껴 울었습니다.
어머니 오랜 세월 병마와 매순간 싸우면서, 또 외국 땅에서 너무나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안고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다만 몸은 아픔으로 절었고 마음은 슬픔에 잠겼나이다." 라고 했던 욥과 같은 심정으로 어머니 앞에 나왔나이다. 이런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인자하신 어머니 성심에 꼬옥 안아 주십시오.
울면서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모두 떠나고 저 혼자만 남아 있어 모든 것 맡기는 마음으로 촛불봉헌을 하고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미사 후 그곳에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서둘러 떠나야만 했기에 너무나 서운했습니다.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내려와 에페소 옛 성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성 앞에서 버스는 우리를 내려놓고 먼저 성이 끝나는 곳에 빈 차로 가기 위해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걸어서 옛 성을 약 1시간 30분 걸려 순례할 예정입니다. 저는 너무나 기운 없고 아파서 혼자 버스타고 내려가 있을까 하는 마음 가득했지만 한편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가봐야겠다는 각오를 하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따라다녔습니다.
이곳은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던 곳이었고 바오로 사도께서 2, 3차 전도여행시 28개월 머무르시며 전도하셨던 곳입니다. 이곳은 문이 활짝 열렸다고 할 만큼 전도가 잘 되었던 중요한 곳으로 많은 마술쟁이들이 마술책을 가지고 나와 불살라버렸고 그 책은 은화로 오만 양어치나 되었으며 주님의 말씀은 줄기차게 퍼져나갔다(사도 19,19-20)고 전해주신 곳입니다.
놀라웁게도 성 전체가 옛 모습 그대로 허물어진 채 남아 있었습니다. 옛 성안으로 들어가 고대 건물 사이의 골목을 이리저리 걷노라니 마치 2000년 전 시간 속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거룩한 성안에 실지 와 있으니 마치 성도들의 숨결이 가까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요한 사도, 바오로 사도, 아폴로, 브르시킬라와 아퀼라 장로... 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셨던 성을 우리는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나무 한 그루 없는 허물어진 성안의 돌로 된 거리를 걸어서 계속 내려가면서 허물어진 채 남아 있는 목욕탕 건물의 흔적, 총독 관저, 그리스도교인들을 몹시 박해했던 도미티안누스 황제의 신전, 귀족들의 가옥 등 사도께서 신도들을 데리고 2년 동안이나 날마다 토론하셨다는 디란노 학원(사도 19,10)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옛 터를 보면서 계속 내려오다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성 요한 사도의 무덤 앞에 이르렀습니다. 사각형의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요한복음을 남겨주신 요한 사도 곁에 몸으로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제 생애에 꿈엔들 바랄 수 없었는데 놀라운 이런 기회를 주신 주님, 또 성모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 곁에서 특별한 사랑 받으셨던 요한 사도여, 당신께 청하오니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라고 말씀하신 그 사랑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은 이 지상에서 주님 생애 중요한 순간마다 항상 주님 곁에 계셨고 마침내 최후의 순간에도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 밑에 서 계셨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깊이 주님의 크신 사랑을 가까이 체험하셨사오니 당신이 늘 주님 곁에서 체험하신 그 뜨거운 사랑의 체험 저에게도 나누어 주십시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랑,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마음이 깨닫고 느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당신은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 보았기 때문에 증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책을 쓰신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1요한 1, 2)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0) 하셨사오니 우리가 당신의 증언을 굳게 믿고 받아들여 생명의 주님을 찾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이 이 책을 쓰신 목적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요한 사도여, 특별히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우리 요한을 당신의 보호에 맡겨드립니다. 당신처럼 주님께 사랑받는 사람 되라고 요한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 아이를 부디 인자하신 주님께 인도하여 주소서.
우리는 그곳에서 내려와 성 아래에 있는 거대한 원형극장에도 가보았습니다. 2500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돌로 된 의자에 앉아 맨 밑에 서서 불러주는 가이드의 아름다운 노래도 들었습니다.(산 넘어 남쪽에는 누가 살기에)
바로 이곳에서 은장이 데메드리오가 자기 동업자들을 선동하여 바오로라는 자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참된 신을 믿게 하여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만들어 돈을 버는 자기네 사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소동을 부리던 곳입니다. "에페소의 여신 아르테미스 만세" 하고 외치면서 바오로의 동료들을 붙들어 가지고 떼를 지어 이곳에 와서 소동을 부리니 사도께서도 그 군종 속으로 뛰어들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말리던 사건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곳에 이렇게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던 우상의 성을 무너뜨리고 참된 신을 모셔 오기 위해 이곳에서 치렀던 치열한 싸움을 생각하면서 나도 내 안에 있는 우상을 허물기 위해 (명예, 사치, 부, 욕망... ) 대신 참 신을 섬기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후 4시경 떠나 저녁 6시경 지중해변의 항구도시인 이즈밀에 도착하였습니다. 시내 중심지에 스미르나 폴리카포 기념성당이 있었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7교회 중의 하나이며 저자로부터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씌워 주겠다" 는 말씀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폴리카르포 주교님이 서기 115-156년 활약하셨고 심한 박해시 체포되어 순교하셨습니다. 17세기에 세우진 교회로 많은 성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시내에 있는) 처음으로 성체를 모신 감실 앞에 꿇어 앉아 기도드렸습니다.
오! 주님, 이렇게 무사히 견딜 수 있는 힘 주심에 진심으로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저를 오늘 보살펴 주신 구세주의 어머니, 저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이 날 밤 저녁도 못 먹고 쓰러져 앓고 있는 저에게 라면을 끓여와 주시고 위로해 주신 스위스에서 오신 마리안나 자매님과 소피아 자매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자신들도 무척 피곤하셨을 텐데... 저에게 쏟아주신 따뜻한 마음 진정 고마웠습니다.

순례 9일
아침 일찍 우리는 사르디스 교회를 향해 떠났습니다. 요한 묵시록 자자로부터 "네가 살아 있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 너는 죽었다. 그러므로 깨어나라... 그리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묵시 3,1-3) 라는 말씀을 들었던 교회입니다. 우리는 인가가 없는 허허벌판에서 허물어진 채 남아 있는 거대한 아르케미스 신전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지었다는 어마어마한 돌기둥들이 아직도 놓여 있었습니다. 한때의 찬란하던 영화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부서진 돌기둥만 놓여 있는 허무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다시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라고 읊으셨던 데레사 성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거짓은 아무리 빛나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는...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던 바로 옆에 기도처가 있었습니다. 조그만 오두막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초대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모여서 기도드리던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시 묵시록의 7교회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교회로 갔습니다. 시내 중심지에 있었습니다. 또한 "나는 승리하는 자를 내 하느님의 성전 기둥으로 삼을 것이며 그가 다시는 그 성전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묵시 3,12) 라는 말씀을 들었던 교회이며, 스미르나와 함께 묵시록의 저자로부터 유일하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핍박과 고통을 사랑으로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튼튼한 굵은 돌기둥이 3개나 그대로 서 있었고 한 군데만 기둥이 박혀 있던 자리에 깊은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티아디라 교회로 갔습니다. 역시 시내 중심지에 있었고 교회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관광객을 위해 철조망을 교회 옛터에 쳐놓고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자색 옷감장수였던 리디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필립비에 오신 바오로 사도를 만났을 때 주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시어 사도를 집에 모셨던 여인입니다(사도 16,11-15). 이 교회는 "나는 네 사랑과 봉사와 인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묵시 2, 18 이하) 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이 세 교회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베르가모 교회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집들은 꼭 우리나라 집 지붕 같아 기와집 같았습니다. 아주 가난한 시골마을 같았고, 먼지 나는 시골길 위에 낡은 차들이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꼭 우리나라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묵시록에서 "베르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너희 중에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뉘우쳐라. 뉘우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묵시 2, 12-17) 라는 말씀을 들었던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다 둘러보고 이 날 묵게 될 산속에 있는 화려한 차낙칼레 호텔로 갔습니다. 이곳에는 터키탕, 사우나, 수영장이 있어 우리는 수영도 하고 사우나도 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순례 10일.
우리는 이곳 호텔에서 아침미사를 드린 후 트로아스를 향했습니다. 기원전 13세기 트로이 임금과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쟁시 이용했던 거대한 트로이 목마와 1-9차에 걸친 성이 세워졌던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트로아스. 이곳은 바오로 사도께서 2차 여행 시 성령의 인도로 오셨다가 신비로운 영상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오셔서 도와달라는 간청을 들으시고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부르신다고 믿고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셨던 곳입니다(사도 16,7-16).
또 3차 여행 중에는 심부름 보냈던 디도가 돌아오지 않아 불안해하시다 이곳을 떠나가신 곳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려고 트로아스에 갔습니다. ... 그러나 만나기로 한 내 형제 디도가 나타나지 않아 마음이 불안해서 교우들과 작별하고 마케도니아로 왔습니다(2고린 2, 12-13).
또 3차 여행을 끝내시고 이곳에서 일주일간 보내시고 떠나시기 전날 밤, 밤늦도록 교우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며 오래 이야기를 나누실 때 3층에 앉아 있던 유디코라는 청년이 그만 졸다 3층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던 곳이기도 합니다(사도 20, 7-12).
이처럼 많은 사도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는 바로 이 바다(다다넬스)에서 우리 순례단도 커다란 유람선을 탔던 것입니다. 저는 유람선 맨 윗층인 3층 꼭대기에 서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도께서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복음 전파의 열정에 가득 차 서둘러 마케도니아로 가시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나가시던 모습과 사랑하는 디도를 만나기 위해 불안해하시면서 이 바다에서 배타고 가시던 모습을 그려보면서 감개무량해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도께서 3차 전도여행을 마치시고 떠나신 이곳에서 우리 순례단도 사도의 발자취를 따르던 우리의 순례를 마치고 처음 우리의 도착지였던 이스탄불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버스를 약 5시간가량 달리면서 그동안 이곳에서 느꼈던 체험담을 서로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어 배가 아프도록 웃었던 이야기, 신앙체험, 이곳 여행 중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 등...
이러는 사이 우리는 아름다운 에게 바다와 올리브나무가 가득한 끝없는 산을 넘어 오후 5시경 이스탄불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산과 바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어나 서울처럼 복잡하고 번잡한 대도시에 온 것입니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이곳까지 근 3000Km나 되는 거리를 온 것입니다.

순례 11일
순례 마지막 날. 우리는 이곳 시내 중심지에 있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에 가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을 벗고 순례객들로 붐비는 속을 서로 잃을세라 꼭 붙어서 가방 조심 몸조심 하면서 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우리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러스로 갔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이 탈 수 있는 작은 유람선을 타고 이 역사적인 바다에서 이제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갔다 올 것입니다.
함부르크의 알스터 호수가 꽤나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스탄불 시를 에워싸고 흐르는 보스포러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했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해변 가까이 있는 화려한 집들, 술탄이 피서지로 사용했던 궁전, 아타트룩이 다닌 사관학교 등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거대한 다리 밑에 있는 루벨리희사라는 성이 있는 곳에 왔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럽이 끝나고 아시아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후 우리는 다시 이슬람 사원 맞은편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으로 갔습니다. 지붕이 둥근 모습의 성당은 현존하는 그리스도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놀랍도록 웅장했습니다.
중간에 기둥이 없었고 15층 높이의 거대한 둥근 돔이 있었으며 둘레에는 40개의 창문이 있었고 벽에는 아름다운 성화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성화의 많은 부분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성당 중앙 맨 위 천장에 그려져 있던 예수님의 모습도 지워버리고 그 위에 "알라는 유일한 신이다." 라는 글씨가 써져 있었습니다. 국민의 98%가 이슬람교가 되어버린 속에서 성당의 파괴된 모습과 관광객과 이슬람교도들이 성당 안에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하시던 성서의 말씀이 떠올라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성당 제일 중앙 앞 벽에는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화가 다행히 보존되어 있어 그나마 반가웠습니다. 저는 이 성화 앞에서 많은 이슬람교인들 틈에 끼어 정성껏 성호를 긋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지금은 한낱 광광소가 되어버린 이곳이 하루 속히 거룩한 주님의 성전이 되게 해주시어 우리들이 다시금 이곳에서 주님께 기도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일꾼을 보내주소서!"
그후 우리는 마지막으로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혼과 마르마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세워져 있는 토카프 궁전으로 갔습니다. 400여년 궁전으로 사용했던 이곳에는 각 세계에서 들여온 온갖 다양한 유물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청도자기, 보석품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다윗왕이 골리앗과 싸울 때 쓰시던 칼과 홍해바다를 건널 때 쓰셨다는 모세의 지팡이, 아브라함이 사용했던 밥그릇, 성 요셉의 두건이 그곳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연신 감탄을 하면서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길을 잃어버려 집에도 못 돌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이리하여 주님의 크고 크신 은총 속에 우리의 순례는 끝을 맺었습니다. 우리는 이날 밤 보스포러스 해협이 보이는 호텔 위층 식당에서 마지막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체험담도 나누고 그 사이 정들었던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서로를 뜨겁게 포옹해 주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저에게 나의 나약한 믿음을 깊이고 다질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증거하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하시며 고통을 겪으셨던 곳곳을 실지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온 지금, 예전엔 어쩐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읽혀지던 성서의 말씀들이 이제는 무척 생동감 있게 그리고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가슴에 울려옵니다. 마치 2천 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직접 사도들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 같은 마음이 되어 성서를 대하니 주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사도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깊이 체험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역사 속의 주님이셨고 역사의 시간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사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진리로 이끌어 주셨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했던 사랑과 구원의 주님을 자신 있게 증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들이 체험했던 사랑이 얼마나 강렬했기에 자신들의 영혼에 깊이 아로새겨진 사랑의 주님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그토록 심한 수난, 모욕, 고통을 기꺼이 견디어내고 끝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는지를 다시금 깊이 생각하니 바오로 사도와 요한 사도의 말씀이 더욱 깊이 마음속으로 파고듭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둡니다(갈라 11, 16).
이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이 증언은 참되며 이 증언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요한 19,35-36).
예수님.
진정 당신은 우리 위해 이 지상에 오셨었고 제자들에게 당신을 들어내 보여주셨으며 당신의 끝이 없는 크신 사랑 보여주셨나이다.
주님, 두 손 모아 비오니 저를 이끄시어 사도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했던 당신께 대한 그 뜨거운 체험 속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제 기도가 차갑고 메마른 죽은 기도가 아닌 살아계신 주님과의 인격적인 대화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발 좀 다른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저의 묵은 모습(이기심, 자만심, 집착, 자애심, 허영 등...)을 버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진정 변화되고 싶습니다. 진실 되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제 생명의 아버지시며 하느님이신 주님,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될 때 깊은 어둠을 비추게 해주셨던 빛,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의 마음속을 비추셨던 바로 그 빛을 이제 제 마음속 깊은 곳에도 비추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제 영혼이 저의 창조주, 저의 구원이신 주님을 알아 뵙고 사랑하고 흠숭하게 하옵소서. 아멘.

저에게 이렇게 귀중한 은총의 시간 마련해 주시고 또 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모든 것 베풀어주신 주님께 또 성모님께 다시 한번 깊은 사랑과 감사드리옵니다. 바오로 사도여 당신께도 다시 한번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 바랍니다"(필립 3,10).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여! 당신이 가지셨던 그 소망이 또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며 목표이오니 우리도 믿음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 당신의 거룩한 삶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특별히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순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시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우리 주임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고 말씀하신 참 목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순례 중 내내 목자의 자상하신 보살핌을 받은 우리는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고 행복한 양떼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피로도 잊으신 듯 언제나 우리들 하나하나를 다 앞서 보내신 후에야 맨 뒤에 따라오시곤 하셨지요. 한 마리 양이라도 잃을세라... "우리는 그의 것, 그의 백성, 그가 기르시는 양떼들이다"는 시편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사제의 깊은 사랑 느낄 수 있음에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저는 이곳 함부르크 공항에서 떠날 때부터 무효가 된 여권을 갖고 나와 하마터면 함께 못 갈 뻔하여 신부님을 애태우게 했던 양이었으며, 여행 마지막 날 토카프 궁전을 본 후는 모두 버스에 타고 떠나려 하는데 저는 미처 함께 있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던 양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당황해하면서 우리의 버스를 찾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신부님께서 친히 우리를 찾아와 주셨지요. 수많은 관광객 속에서 막막해하면서 절망 중에 있을 때 신부님을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반갑고 또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신부님, 말썽꾸러기 양이었던 못난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외에도 첫날밤부터 아파서 병원 응급실로 가야했던 양과 아예 여권 연장기간이 지난 여권을 가지고 와서 터키공항에서 이틀이나 잡혀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우리에게 돌아올 때까지 신부님 애간장을 태워드렸던 두 마리 양, 또 어떤 양은 너무 피곤한데다가 매일 호텔이 바뀐 탓인지 실수로 남의 빈방에 자기 방인 줄 알고 들어가서는 자기 가방과 방 친구가 없어졌다고 소동을 부렸던 양.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건을 일으켜 신부님께 근심 걱정 끼쳐드렸던 양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처럼 많은 어려움을 드렸던 어린 양들을 한 마리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무사히 모두 이곳까지 데려오시느라 신부님 정말 너무 애쓰시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우리 위해 고생하신 주임신부님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행이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몹시 근심하고 마음을 졸이고 기도했지만, 사건이 하나하나 해결될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뻐했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모든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도와주신 주님을 찬미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 28).

이 글은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제 삶의 고백이며 신앙고백입니다.

2004 대림시기에 노수산나.


PS. 처음엔 이번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 분들께 우리 순례여행을 나누고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너무나 긴 글이 되어 쑥스럽습니다. 이 글을 쓰느라 너무나 고생했지만 순례를 다시 하는 것 같아 무척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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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순 2004.12.23 19:46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야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느낌이군요
    순레중 그렇게 고통과 불면증의 괴로움을 삮이시면서,언제
    이런 꼼꼼한 기록을 하셨나요
    주님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 하신것 같아 샘나네욯ㅎㅎㅎㅎ
    무쪼록 주님의 사랑 항상 간직하시며,제게도 그런 사랑 쨈만
    나눠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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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춘배 2004.12.23 20:27
    수잔나 자매님! 여행기 참으로 좋네요, 저는 같이 못 갔지만
    자매님의 설명중에 제가 보았던곳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네요,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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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피아 2004.12.23 20:53
    + 평화와 선
    수산나 자매님 힘 내세요. 자매님의 기도가 바로 저의 기도이자
    우리 모든 양들의 기도가 아니겠어요_
    자매님 가정에 아기 예수님 탄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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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숙 2004.12.27 10:07
    노정자 후배의 글을 우리 동문회 카페로 퍼 갑니다...
    이 여정에서 느낀 주님을 향한 기쁨과 아름다운 추억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둔 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늘 영롱하게 비춰 주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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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정남 2004.12.31 08:5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모든일이 다 이루어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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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열 베드로 수사 2005.01.12 06:53
    존경하올 수산나 자매님, 오랫만에 불러봅니다. 인터넷상에서나마 이렇게 만나게 되니 참 반갑습니다. 헤레나 자매님을 통해서 수산나 자매님의 훌륭한 순례기를 전해들었으면서도 이제서야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컴퓨터도 잘 모르거니와 인터넷에도 참 서툽니다. 연말 연시 바쁘기도 했지만 실은 정성이 부족해서 이제야 열어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도 훌륭한 순례여정의 기록이군요. 저도 수도원에서 사는 덕분에 이스라엘이나 루르드, 메주고리에, 이태리의 로마나 아씨시 등을 순례할 기회가 있어서 조금은 경험이 있지만, 단체로 함께 순례하기가 무척 힘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더더욱 자매님은 몸에 병고라는 큰 십자가를 지고 동행했으니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요? 안타깝기만 하고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할지조차 생각이 안 나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나 고생한 보람도 크시고 그 이상으로 영적으로는 많은 깨달음과 느낌을 얻어오셨으니까 주님과 성모님, 성 바오로 사도와 베드로 사도님 안에서 큰 위로를 받으실 거에요. 글 솜씨도 좋으시고, 섬세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가지셨군요. 마치 사도행전을 묵상하는듯 실감이 났습니다. 고통 중에도 긴 여정기를 잘 써서 올리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신 자매님께 주님의 크신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 사도 성 바오로와 성 베드로님의 전구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길 빕니다. 2005년 새해에는 더욱 더 육신의 회복과 건강의 축복, 내적인 평화와 영적 기쁨으로 늘 충만한 시간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자매님의 자랑스러운 조국인 대한민국의 서울 정동 수도원에서 작고 부족한 사람 조대열 베드로 수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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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수잔나 2005.01.16 00:17
    아이구, 베드로 수사님!
    이게 웬 영광이예요.수사님 편지를 다 받게되다니...부족한 저의 긴_글을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지요?항상 강의하러 다니시 랴... 무척 바쁘실텐데...너무나 감사해요. 너무 고신극기 하시느라(?) 프란치스코 갈색 수도복에 쌓여계신 빼빼마르신 수사님을 뵈올때 마다 마치 이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라도 뵈옵는것 같은 경건한 마음이 되어 기쁘지만 한편 수사님의 건강이 무척 걱정스럽습니다.새해에는 더욱더 건강하시고 주님 영광과 성교회의 발전을 위해 바치신 수사님의 거룩하신 삶에 주님의 크신 축복이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내내 안녕히...
    Hamburg에서 수잔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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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열 베드로 수사 2005.01.17 00:27
    수산나 자매님 이국 멀리에서 항상 건강하시고 기쁘게 사시길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아우님 헤레나 자매님과는 종종 통화하고 만납니다. 좋으신 자매님, 언제나 주님과 함께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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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nah Lee 2005.03.05 20:02
    수잔나님의 여행기를 읽고나서, 저도 꼭 Turkey 에 성지순례를 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치 아픔속에서 자라나는 진주처럼, 수잔나님의 믿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계속 나눔의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