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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 15:20

10) 내가 만난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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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내가 만난 세상은                         김 진호 (프란치스코)

 

고향을 그리다가보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며 힘들고 즐거웠던 일들이 많이 생각난다. 언제인가 4살 위 누님은 나에게 깨끗한 옷을 갈아입히더니 내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오늘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이라고 했다. 집을 막 나오는데 벌써 우리 집 앞 도로를 꽉 매우고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면서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기쁘기도 했다. 어리둥절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처음으로 먼 거리를 걸어서인지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었다, 그래도 집에 간다는 생각에 좋아서 참고 누님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누님을 부르며 학교가 너무 멀다고 다리가 아프다고 떼쓰며 길 가운데에 주저앉아 울었던 철부지 시절 생각에 힘없는 웃음으로 변명을 대신하고 있다.

사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1.5Km 그러니까 특별히 먼 거리라고 투정을 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어떤 학생들은 우리 집에서보다 배가 넘는 마을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은 멀고 가까운 거리에는 관계없이 아침이 되면 이 마을 저 동네에서 몰려나오는 학생들 때문에 우리 동네 2차선 도로가 좁아 보일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모든 학생들은 책가방이 없어 책과 노트 필통들을 천보자기에 둘둘 감아 남학생들은 어깨에 둘러메고 여학생들은 허리에 질끈 동여 묶고 학교에 가는 모습들이 마냥 평화스럽고 아름다웠다. 생각해보면 학생들의 복장도 가지각색 이었다. 남학생들은 솜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고 어떤 학생들은 양복이라고 하는 옷을 입고. 여 학생들은 긴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숨기고 싶을 정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들도 많았다. 그 무렵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가난했다.

얼마나 가난했느냐면 모든 학생들이 운동화는 생각도 못하고 많은 학생들은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나는 8살 이었는데 우리 반에는 10, 11, 12살 형 같은 반 친구들도 있었다. 거기에다가 한 반에는 60~70명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혼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학년마다 1,2,3반으로 나뉘어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입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학생들과 선생님과는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선생님은 위대하시고 무서운 스승님으로 존경받으셨다. 그 시절에 끝없이 증가하고 있는 학생들의 숫자보다 선생님은 턱도 없이 부족했던 편이었지만 선생님과 학생들은 크게 불편한 것 모르고 함께 잘 어울려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다. 이렇게 스승과 학생들과는 좋은 관계로 6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생활하며 정이 들었기에 졸업하는 날에는 이별이 아쉬워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가정형편에 따라 저마다 가는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에 많은 갈등으로 고통이 시작된다. 남학생의 약 20% 여학생들은 약10%정도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머지 초등학교를 졸업한 남학생들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집에서 농사일을 돕거나 아니면 서울이나 인근도시 공장에서 또는 공사판에서 막 노동을 하고 여학생들은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 환경이 엉망인 지하 봉재공장이나 가발공장 또는 신발공장 등지에서 그리고 버스차장이나 소위가정부라는 일자리를 찾아 부모님 곁을 떠나 낯선 삶을 찾아가야만 하는 고통이 따랐지만 이에 누구도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이런 어린 소년소녀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며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살면서도 작은 월급이었지만 부모님을 돕는다는 생각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서 말도 되지 않는 좁은 기숙사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했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959년 우리니라 국민 70% 이상의 직업이 농업이었고 평균수명은 47세 국민소득 62불 인구 2430만 명이 살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먹고 산다는 것마저도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에 가장들의 소원이 가족들을 굶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했다. 그때 세계에서 가장 넘어가기 힘든 고개가 바로 우리나라에서보릿고개라고 했을까 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만나게 한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라디오를 만든 것은 구 윤희 회장님의 금성사 (지금의 LG)에서 1963년도에 생산판매가 시작되었고 그리고 TV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산판매가 시작되었던 것은 19668월 이었다. 그때 판매 가격은 6만원(25가마)이었음에도 이 신기한 기계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생산량의 부족으로 공개추천으로 판매했다. 그러니까 신청하고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차례가 될 정도로 TV를 구입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것이 50~60년 전 우리나라의 생활환경이었다.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집 전화기는 한 가정에 재산목록의 하나일 정도로 값이 비싸고 설치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나 사용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약 90%의 국민들은 길모퉁이마다 세워져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수도꼭지만 돌리면 찬물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우물물이나 흐르는 시대물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추운 겨울이 되면 길이 미끄러워 운반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물론 큰 도시에서는 집안에서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는 가정들도 있었지만 그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나머지 많은 가정에 주부님들은 집 주위에 정해져있는 수돗물마저도 값을 지불하고 받아와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물을 길어다가 사용하는 것보다도 더 불편했던 것은 화장실 사용문제다. 그나마도 집에 화장실이 있는 이는 크게 불편함을 모르지만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가정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는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의 지방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수세식 화장실은 극소수인 1%의 가정에서 사용했을 뿐 나머지 가정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은 상상조차도 못하고 퐁당 변소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시로 인분을 비워야만 계속 사용할 수가 있고 인분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소위 똥차를 사용해서 처리되고 있었다. 그래서 인분을 처리하는 날에는 온 동네가 악취로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아진 인분은 그대로 버려지지 않고 농촌에서는 각 가정에서 필요에 따라 비료로 사용하고 서울에서 모아진 인분들은 서울 인근에 채소를 재배하는데 비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학교에서나 모든 단체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회충약을 의무적으로 복용해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누구나 사용하고 있는 냉장고, TV,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는 가정들도 극소수인 1%정도에 불과했고 에어컨이나 세척기는 생각조차도 못했다. 생각해보면 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시작할 때 많은 정치가들은 자동차가 없는 나라에서 고속도로가 왜 필요하냐며 반대가 심각할 정도로 국민 99%가 자동차를 사용하지 못했다. 아니 자전거마저도 가격이 비싸서 아무나 사용하지 못했고 각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전기 밥솥마저도 없었기에 양은 냄비나 가마솥으로 도시에서는 연탄불을 사용해서 지방에서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부엌에 불을 피워야 밥을 해 먹을 수가 있었다. 물론 집안에 목욕탕도 없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집에서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하고 도시에서는 공동목욕탕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욕을 자주할 수가 없어 어린애들의 손발에 때가 덮여 손발이 갈라지고 피가 질질 흐르고 머리에도 이들이 서식하고 어른애들 할 것 없이 속옷에서는 이가 서식하였기 때문에 등잔불 밑에서 이를 잡았던 기억이 난다.

여름에는 파리모기와 전쟁을 했고 겨울에는 빈대 벼룩들과 집 천정에 서식하는 쥐와도 싸워야했던 거지같이 힘들게 살던 시절이 어저께 같은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지금은 부자가 된 나라에서 새로운 것들을 가지고 누리고 즐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려니 신가하고 자랑스럽다. 문제는 이처럼 많이 발전하고 편리해진 것들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감사할 줄도 모르고 행복하다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부족해서 인지 여전히 불평불만으로 원망하고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역시 사람의 욕심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끝이 없기에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인가 하고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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