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작가 엘리 위젤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교수형을 당하던 모습에 대한 경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유여 영원하라!” 외친 후 어른 둘은 금세 숨이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밧줄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운 탓에 아이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내 뒤에서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어디에 계시냐고? 여기 계시지. 지금 저 처형대에 매달려 계시지.”
요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삶이 참 절박합니다.
답이,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해당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개인의 성실성이나, 각자도생에 맡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럴수록 신앙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 한 마디가
절망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길이 아닌 가 싶습니다.
하느님의 슬픔을, 아픔을, 걱정을 덜어드리는 일이자
동시에 하느님의 도움을 끌어들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쌓아두지 않고 부단히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말 그대로 정처 없는
절대 자유인의 삶을 사셨습니다.
슬픔이나 아픔이나 절망에 머물지 말고,
아니 이들을 끊임없이 비워내고 주님의 기쁨, 평화, 위로, 사랑, 믿음으로
가득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은 흐름입니다.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을 따라 흐르면서
지금 여기에 깨어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