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예측을 합니다.
경제, 정치, 문화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예측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 번 본 것을 가지고서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을까요?
선거 때 보면 선거 전에 여론 조사를 몇 차례 합니다.
예측을 좀 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단 한 번의 예측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정확한 예측만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예측을 하며 말합니다.
‘너무 어려워.’, ‘안 될 거야.’, ‘못해’, ‘나는 부족해’,
‘소용없어. 그래봤자 달라지지 않을 거야.’ 등의 예측을 자신을 향해서 합니다.
그러나 이 예측이 틀렸을 경우가 더 많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50% 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동전의 앞뒤를 맞추는 것보다 더 낮은 확률입니다.
잘못된 예측은 하느님께 대한 잘못된 예측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의 뜻을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정확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마치 자신이 하느님 양 끊임없는 예측을 하면서
그것이 옳다고 단정 짓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못된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시고,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음을 말입니다.
예언서와 율법의 완성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랑이 예언서와 율법의 정신이고, 따라서 이 사랑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될 수밖에 없고,
사랑을 철저히 지키려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예측은 사랑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 대한 잘못된 예측을 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철저히 적대적인 모습을 취했고, 그 적대적인 모습이
후에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섣부른 예측보다는 사랑이 먼저입니다.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