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로마 시대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아주 깊이 연구하고 활발하게 토론했던 시기입니다.
그 당시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행복론에 관하여 깊게 연구했고
책 또한 많이 썼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행복론에 대한 대표적인 학파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학파로,
또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를 추구하는 학파로 알려져 있는데
중요한 것은 두 학파 모두가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좀 더 파고들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흔히 쾌락주의의 선봉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학파는
인간 행복의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추구해 보고
그것이 나쁘면 다시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식으로
인간의 욕구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옷을 입으며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등
행복의 출발을 육체적인 쾌락을 만족시키는 오감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스토아학파는 인간의 참된 행복은
좋은 것을 먹고 입는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욕망을 자제하여 정신과 영혼을 풍요롭게 할 때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금욕주의가 발달했습니다.
이렇게 각자 다른 관점으로 출발한 두 학파 중에
오래지 않아 에피쿠로스학파가 없어지고,
스토아학파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의 바탕이 되어
천주교 신학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많은 수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스토아학파에 영향을 받아서
오늘날의 신학을 형성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은 입고 먹는 등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데에서는
행복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 속에서 많은 철학가나 신학자들에 의해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살면서 가끔 저는 마치 250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 같은 사람들로
온통 넘쳐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원하며 더 좋은 것,
또 더 좋은 것을 끝없이 찾아 헤매면서 행복해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또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먹고 입고 소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밤낮없이 노력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늘어난 것은 걱정거리요, 두려움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재물과 건강과 자녀 교육에 있어서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하느님 사랑과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고,
사랑만이 우리를 우리다운 행복으로 인도해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