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일들 가운데는 내가 예상하는 방법이나 순서대로 일어나는 일도 있고,
내가 알 수 없거나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리 예상하는 경우라면,
우리는 다음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미리 계획할 것입니다.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입지 않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명예가 사라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물론 내 생각대로 된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말일 뿐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는데,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하라고 충고해야 할까요?
물론 내가 충고하는 대로 상대방이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충고하는 내가 생각하는 방법과 내 말을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 심각성과 사정이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그리스 북쪽에 있는 필리피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좁은 감방에 갇힌 바오로와 실라스는
이해할 수 없는 자세로 세상을 대한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방식대로 행동한 사람이니,
그들은 지극히 당연하게 움직인 것이겠지만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방식입니다.
도망치고 달아날 수 있는 기회가 닥쳤는데도
문이 열린 것을 보고도 죄인으로 붙잡혀있던 사람들은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혹시라도 도망쳐봐야 다시 잡힐 거라고 생각해서 도망치지 않았는지
그 사정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결과를 보면 복음을 전파하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는 했습니다만
신앙의 모습은 이렇게 펼쳐지는 때가 있습니다.
모두 내가 이해하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을 받은 다음이라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세상의 방식과 신앙을 먼저 드러내려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릅니다.
어떤 것이 좋다고 하고, 어떤 것이 안타깝다고 할지 말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 판단이 중요한 것보다는
나는 그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길을 생각하는 것이 옳은 자세일 것입니다.
훌륭한 행동은 갑작스레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다짐과 노력을 한 다음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