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 색깔이 없는 안경을 쓰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이지만
만약 돈의 색이 입혀지면 산도 돈으로 보이고 물도 돈으로 보이고
자신도 돈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는 방법은 거울에 비추어 보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그 거울을 볼 때는 색안경을 끼고 있는 자신이
그 색을 통해서 보여 지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빛으로
자신도 보이게 마련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경의 색을 빼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좋은 색이 입혀진 안경을 끼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랑의 안경을 끼면 그 사랑으로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자신도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무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빛깔의 안경을 제공하러 오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림자를 잡으려고 앞으로 가면 그림자도 앞으로 가 버려서
잡히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그는 점점 빨리 걷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그림자도 점점 빨리 달아났습니다.
그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지만 그림자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그림자를 잡으려고 뛴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결국 저녁이 되자 그는 탈진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쫓던 그림자는 저녁노을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만약 그림자를 쫓는 일을 멈추고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갈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나에게 화가 나거나 증오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에 집중하여 그것을 제거하려 해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빛을 받지 않도록 자리만 옮기면 그만입니다.
마찬가지로 안경만 바꿔 쓰면 그만이란 것입니다.
나무그늘에 들어가면 더 이상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안경만 바꿔 쓰면 그런 감정들이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모든 안 좋은 감정들이 일지 않도록 감싸주는
그 나무그늘은 무엇일까요?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 산을 산이도록, 물을 물이도록 직시할 수 있게 만드는
깨끗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겸손의 그늘에서는 어떤 안 좋은 감정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안 좋은 감정의 씨앗이 교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자비를 입을 것이고,
무자비한 사람은 무자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억지로 사랑을 실천하려고 힘들이지 말고
그냥 사람 자체가 사랑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