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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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5 20:37

철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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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철부지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철부지’라는 단어에서 ‘철’은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 곧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런 ‘철’자에 한자말인 부지(不知)가 붙으니,

결국 ‘철부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지금이 어떤 순간인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 가운데만 철부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에 상관하지 않고 철부지들이 있더군요.

예를 들면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입니다.

큰 사고가 생겨 다들 심각한 상태인데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깔깔대고 있다면

그분은 철부지입니다.

연세가 만만치 않게 드셨는데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그분 역시 철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대체로 자기만의 특별한 안경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입견의 안경, 고정관념의 안경, 자기 잣대의 안경, 고집의 안경,

나만의 틀의 안경, 자기중심주의 안경.

특별히 유다 지도층 인사들은

전통의 안경, 선민의식의 안경, 율법주의의 안경을 즐겨 썼는데,

그 결과 자신들의 코앞에 등장하신 하느님을 뵙지 못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철부지들은 아직 영혼의 때가 묻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순수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그래서 이웃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십니다.

이런 맑은 영혼의 철부지들은 세파에 찌든 영혼들보다 훨씬 쉽게

세상만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박학다식하다는 것, 참으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한 분야에 깊이 심취해서 연구하고 기념비를 남기는 것,

그래서 후학들의 등불이 되어주는 것, 참으로 보람된 일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겸손의 덕을 쌓는 일입니다.

겸손의 덕이 배제된 지혜나 학문은

은총으로 향하는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끔씩 신학서적을 많이 읽었고, 신학공부도 많이 하신 분들 가운데서도

이런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학문적 깊이는 있지만 신앙은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그런 분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자신을 내려놓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낮추고 비워내는 태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도입니다.

인간 존재의 한계, 미약함, 태생적 결핍을 잘 아는 사람만이

신비의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겸손의 도리를 배우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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