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로그인

2020.04.08 19:52

조회 수 145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복음을 읽으면서 문득 마음에 남는 구절입니다.

이 대화가 등장하는 때는 저녁입니다.

저녁은 밤만큼 어둡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녁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낮과 밤의 경계에서

낮의 밝음이 밤의 어두움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황혼의 아름다움을 보고 설렐 수도 있겠지만

빛을 붙잡을 수 없는 동시에 다가오는 어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실존적으로는 불편하고 불안한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적 배경을 설정하면서

마태오 사도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요?

마태오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유다를 제외하고는 예수님과 함께

밤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조금은 불안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산란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과 달리 그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이라는 시간에 머물러 있으면서

심연의 밤에 한쪽 발만 살짝 걸치고 있다고나 할까요?

제자들은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배반에 대한 예수님의 예고에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습니다.

이 물음은 아직 예수님과 함께 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제자들의 근심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 제자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예수님과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근심 걱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숨을 거두신 뒤에라야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신랑을 빼앗겨 버린 제자들이 겪어내야만 하는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이 밤이 여느 어두운 밤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겪으신 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밤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밤은 부활을 기약할 수 있는 복된 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제자들을 당신의 밤으로 초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에워쌌던 그 심연 속에 머무르면서

그분이 마주한 시간의 무게와 그 심연 안에서 겪으셨던 산란함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제자들이 겪게 될 밤의 시간과 심연의 고통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밤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란함 속에서 당신의 길을 걸어가셨고 부활하셨기에

제자들은 더 이상 심연 속에 머물러 있다 해도 산란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징표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 가입 때 문제가 생기면 박철현 2021.09.13 21819
공지 긴급 공지 1 박철현 2020.05.09 10882
공지 로그인 하셔야만 보실 수 있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5 박철현 2018.09.09 8972
970 성탄 축하드립니다. 3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2.24 3671
969 대림특강 마침기도 - 그리스도만이 生의 전부입니다. 1 file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2.12 2054
968 마지막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 아닌가 봅니다 ! 3 허길조 2013.12.06 1888
967 종북 사제 논란 - 참조 하시길 바랍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1.27 1527
966 사목협의회 게시판은 로그인을 하셔야 볼 수 있습니다. 내용 없음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1.21 3071
965 소공동체 기도모임 시작...!! 최한우 바오로 2013.11.19 1955
964 10월의 마지막 밤을...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0.31 1650
963 침묵 file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0.24 1944
962 2013년 독일 사목자 회의를 마치며... 1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0.18 1830
961 함부르크 본당 전 공동체 청년 신앙연수 4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0.01 2415
960 묵주기도 file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10.01 1740
959 말(言)의 온도를 높이게 도와 주소서. 1 file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13.09.03 1624
Board Pagination Prev 1 ... 214 215 216 217 218 219 220 221 222 223 ... 299 Next
/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