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든 일의 중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 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일,
그것만 잘 해도 순리대로 풀리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만
풀리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요.
"사제는 매듭을 풀어주는 사람"이라고.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오해에서 비롯되어
꼬이고 꼬인 가닥이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런 인연들의 모습을 볼 때가 있고,
때로는 사소한 서운함에서 비롯되어
온통 헝클어져 버린
그런 인연들의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인연들 중에는
누군가가 가위를 들고 완전히 잘라내어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연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속앓이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저도 그런 인연들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저는
가능하면 인연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어떤 분이 저에게
"신부님은 다가가려고 하면
자꾸만 뒤로 물러서는 것 같아
때로는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정이 깊은 인연이 되는 걸
스스로 경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기피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스스로 어떤 경계선을 그어놓고
사람을 대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그런 사람은 결코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는 감정적으로 좀 메마른 편입니다.
하지만 그런 덕분에
모든 사람들을 별다른 차이 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제가 그 사람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지
늘 웃는 낯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다가선다는 건
어쩌면 위선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확실히 위선입니다.
그렇지만 좋아하지 않는 그 마음조차도
오래 간직할 것이 아니니
굳이 그것을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건
가끔은 제가 신부라는 것 때문에
저에게 상담을 하거나
속 깊은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저 역시
해답을 알려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그저 같이 한숨만 내쉴 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
혹은 인연에 관한 이야기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왜, 인연의 실타래는
엉키는 경우가 더 많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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