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회의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함으로써

그간 정성껏 가꾸어온 일들이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또 손을 대면 댈수록 일이 묘하게 꼬이기만 해서

자신의 능력에 깊은 좌절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깊은 슬럼프에 빠져들면서

모든 일이 귀찮아지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되기도 합니다.

"난 정말 안 돼! 난 그림에 소질이 없나 봐."

러시아의 추상화가 칸딘스키도

이토록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탓이었습니다.

칸딘스키는 자신은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비관하며,

한동안 그림도 제대로 그리지 않은 채

거리를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화실에 들른 칸딘스키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명작이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의 화실에

이런 그림을 걸어놓고 갔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림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던 그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을 거꾸로 걸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전문 작가가 아니면

위아래를 구분하기 어려운 추상화여서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망쳤다는 생각에 미완성으로 내버려 두었던 그림이

우연히 거꾸로 걸림으로써

명작으로 둔갑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찢어버렸을 미완성의 그림이

불후의 명작으로 살아남은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칸딘스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숨어 있는 잠재력이

엄청나게 다른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단단히 들러붙어 있던 고정관념의 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그림 기법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는

진정한 파브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 신완선님 <파이팅 파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