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로그인

조회 수 7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 가입 때 문제가 생기면 박철현 2021.09.13 21967
공지 긴급 공지 1 박철현 2020.05.09 10994
공지 로그인 하셔야만 보실 수 있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5 박철현 2018.09.09 9084
1811 어른도 응원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박철현 2018.07.27 231
1810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박철현 2018.07.27 763
1809 지금과 다른 미래를 만나기 위해 박철현 2018.07.28 1748
1808 경험으로 맛보는 진리 박철현 2018.07.28 3134
1807 타인을 깔본다면 그 결과는 박철현 2018.07.29 113
1806 진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행복 박철현 2018.07.29 670
1805 집도 차도 없는 억만장자 박철현 2018.07.31 1182
1804 가슴에 감동을 주는 글들 박철현 2018.07.31 985
1803 나는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박철현 2018.08.01 922
1802 바위섬 박철현 2018.08.01 1233
1801 '지금'이라는 글자를 써보십시오 박철현 2018.08.02 2689
1800 낡은 턱시도 박철현 2018.08.02 245
Board Pagination Prev 1 ...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 299 Next
/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