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인 천주교회


로그인

조회 수 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 가입 때 문제가 생기면 박철현 2021.09.13 175
공지 긴급 공지 1 박철현 2020.05.09 322
공지 로그인 하셔야만 보실 수 있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5 박철현 2018.09.09 429
768 함께 지내는 일 박철현 2020.09.14 44
767 나무 손질 박철현 2020.09.15 33
766 해바라기 사랑 Theresia 2020.09.16 37
765 분별 박철현 2020.09.16 35
764 가끔씩 눈을 들어 박철현 2020.09.17 38
763 변화와 유연한 마음 박철현 2020.09.18 29
762 멍에 박철현 2020.09.19 30
761 성실한 자세 박철현 2020.09.20 29
760 행복 박철현 2020.09.21 34
759 '붙잡음'과 '내려놓기' 박철현 2020.09.22 26
758 인내와 끈기만이 박철현 2020.09.23 28
757 얼굴 박철현 2020.09.24 30
Board Pagination Prev 1 ... 229 230 231 232 233 234 235 236 237 238 ... 297 Next
/ 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