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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2 21:25

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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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올 사람도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더듬더듬 한국어를 하면서

저를 만나야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저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했다가

그래도 한국말을 더듬더듬 했기 때문에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만났더니 역시나 먹을 걸 위해 얼마 쯤 도와줄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서툰 한국말이라도 하는 까닭에

그것이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돈을 주어 보냈습니다.

구구절절 독일어로 이야기를 했지만

솔직히 그 이야기는 귀에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말을 몇 마디라도 할 줄 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먹을 것이 없다는 둥,

서울까지 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다는 둥 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얼마라도 얻어서 술이나 담배를 사기 위해서

그런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확실히 구걸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합니다.

자존심은 완전히 내팽개치고 굴욕적인 모습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구걸에 성공하면

그 돈은 정말 필요한 지출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지출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면 그냥 돌려보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성당에 있는 사람이 왜 그리 인색하게 구느냐고

타박까지 주고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오늘 오신 분에 대해서는 조금 동정심이 생겼습니다.

외모도 동양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언어라는 것이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나 봅니다.

독일에 살면서 어쩌다 만나는 젊은 청년들 중에는

독일어는 너무 잘 하는데 한국어는 전혀 할 줄 모르는

한국계 독일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이해는 되지만 동질감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일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사람이라고

거의 인정을 하지 않을 테니 독일인도 아닌 분들이지요.

부모님께서 먹고 사느라 바빠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서 오늘 만난 사람은 비록 구걸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한국어를 더듬더듬 말한 까닭에 오히려 제 마음을 더 움직인 듯합니다.

어쩌면 그것조차도 잘 준비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에게는 속더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언어 하나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만난 그분이 빨리 자신의 사회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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