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by 박철현 posted Jul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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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듣고 작문하는 수준이 높지도 않고 발음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의 범위는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작은 열매가 강론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은 뭘까요?

아마도 어렵겠지만 ‘유익한 자료들을 번역하고 글을 써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마음은 있었어도

‘내 실력으로 무슨 그런 일을.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지.’라는

생각 때문에 멈춘 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큰 나무와 열매를 기대하고 그리는 것은

우리를 멈추어 서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걸어가야 함을 알려주고 희망하게 하려는 것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너무 크거나 높아서 할 수 없다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는 방향으로 아주 작은 걸음을 옮기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하고 좋습니다.

여기로 독일어를 공부하러 오신 손님신부님은

그런 면에서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도교수님의 제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익숙한 로마를 벗어나 모든 면에서 낯설 수밖에 없는 여기에서

독일어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걸음을 떼고 시작할 수 있는,

또 한두 걸음 옮기고 또 옮길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어쩌면 저에게는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사제 생활 20년차를 지나면서

안주하는데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요?

지금은 예전에 가졌던 열정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미사 때 보이지 않는 분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묻는다거나

한 번 쯤 연락을 하는 일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염려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저 마음에서만 맴돌고 마는 그런 식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그분들을 위해 화살기도라도 바치고 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