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곳곳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또 몸에도 지니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담긴 주님의 사랑을 일깨우고
십자가를 지겠다는 고백을 하지 못한다면
그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십자가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상품화되는 현실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새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승리를 이루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에 앞서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녀 벨라데타는
“십자가는 내 눈과 가슴에만 있을 뿐 아니라
내 안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만일 생활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된다면
그분은 분명히 나를 부활시켜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미리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경우에 왜 나만 십자가를 져야 하느냐고 하소연합니다.
왜 나는 이런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 하느냐고 투덜댑니다.
그러나 그 투덜거림 속에서 십자가는 더 무거워집니다.
“십자가의 길에서는 언제나 첫 발이 중요합니다.
십자가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더 큰 십자가가 됩니다.
첫 발을 예수님께 맡기십시오.”(성 요한 비안네)
사람마다 져야 하는 십자가는 다르지만 모두가 자기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가난이 십자가일 수도 있고 오히려 큰 부가 십자가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녀가, 남편이, 아내가, 동료가, 공동체의 일원이, 장상이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격이, 언어의 습관이, 주변의 환경이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다듬고,
겸손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마침내 내가 취할 길을 발견하게 하고,
가야 할 길에 용기를 얻게 해 주십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피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은총을 구해야겠습니다.
십자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십자가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