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을 주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줍니다.
이 모두가 사랑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깊이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주십니다.
당신 가진 것을 다 주신 것도 모자라 자신을 온전해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도 당신처럼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가진 것을 주면서 충분히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는 가진 것이 다 떨어져야합니다.
가진 것만을 주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꼭 필요한 무언가에
피해가 온다면 곧 내어주는 것을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데도 사랑이 있다면 자신을 내어주게 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생명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건강을 먼저 생각한다면 자신을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가난해야 합니다.
사랑의 더 깊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부자가 당신을 따르려고 할 때
가진 것을 먼저 다 팔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돈만 나누어주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정도라면
당신 제자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예멘 난민 500여명 때문에
사회가 한창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많은 나라들은 난민들을 받아들여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난민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적지 않은 실정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우리나라 국민 중 많은 이들은
난민을 받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줄 수 있는 것은 주겠지만
우리 자신은 주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가진 것을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하지만 내 자신을 내어줄 수 없으면 참다운 사랑은 아닙니다.
과연 유럽사회가 난민 때문에 더 병들어갈까요,
아니면 인종차별적 이기주의나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더 병들어갈까요?
상처 하나도 받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줄 것이 하나도 없을 때 비로소 참으로 줄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가진 것을 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주어야 참 사랑입니다.
자신 안에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자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을 때 하느님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내어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