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다사다난했습니까?
그런데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외적으로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 나날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사회 불안도 많을 것입니다.
무슨 방법으로 이 시대에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겠습니까?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과 우리 교회 위에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기초적인 상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심지어 유령이라며 무서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즉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고
제자들을 안심시키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자기 전공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당시 그에게는 예수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자기 전공을 잊어버려야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경험, 자기의 방법, 자기의 사고방식을
예수님 앞에 완전히 복종시켜야만 주님을 신실하게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무엇에 끌린 듯이 물 위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단지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만 생각하면
나갈 길이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구원합니까?
누가 이 혼돈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는 계속해서 두려움의 소문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부와 돈만으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더 악해질 뿐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나와 이 교회를 통해 마귀의 세력을 끊으시고 승리하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