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몇 번인가 강론 때도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2020년은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안타깝고 근심으로 어린 시간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바이러스와 힘겹게 대치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이토록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사실도 경험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강요당한 물음을 던진 때도 많았습니다.
물음표로만 남는 질문, 깊게 고민을 해본 적은 없지만
확실히 어떤 질문은 답을 구할 수 없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일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에서
그리고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지도 못할 만큼
바이러스가 가져온 파도는 무척이나 높았습니다.
늘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혼란은
한 해를 관통하는 화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방공동체 미사가 없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야 할 일도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평소에도 밖으로 나가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일에 더 없이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론 반쪽이 되어버린 미사참여자와
예정되어 있던 모든 행사가 취소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 만큼 사람들과 친교를 나눌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나름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다는 게 조금 미안한 일이기는 했지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그걸 나누는 방법을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얼룩진 올해가 지나가면
좀 더 밝은 색이 번져가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결국 삶이라는 숙제는 해답이 없는 노트입니다.
거기에 무엇을 쓰고 무엇을 그려갈지는 각자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어떤 그림을 그리더라도
지우고 다시 받을 수 없는 노트가 삶이라는 숙제입니다.
그래도 그 안에는 좋았던 일도 많았고, 기뻤던 일도 많았습니다.
슬픈 일, 아팠던 일은 이제 지워버리고
마음 한켠이 허허로워지는 그런 것들만 남기고
2020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