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현상

by 박철현 posted Aug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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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이 한 번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심각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플라톤을 비방하는데도

그는 자기의 처지를 변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왜 변명을 안 하십니까?”

그때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비난을 종결시키는 것은 나의 변명이 아니다.

그들의 비난을 침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올바른 행위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간혹 오해로 인해서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풀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실이 꼬이듯이 오해가 깊어질 때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조용히 기다리는 편을 선택합니다.

지금 당장에는 어떤 말을 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수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인내하시면서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온전히 순종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면

그리스도를 믿는 분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물론 천주교는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같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안타깝습니다.

한 목사님의 일탈에서부터 시작된 일은 오해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오해와 현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해는 기다리면 풀릴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을 부정하고 다른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꼬인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꼬아버리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음모론을 펼치고 있고,

거기에 동조하는 분들도 생겨나는 모양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살다 보면 오해를 할 수도 있고,

사람에게 더 이상 신뢰를 둘 수 없는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기다리는 것이 지혜라면

현실에서 실제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도 하나의 용기입니다.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할 때

그 일은 예수님께 다시 십자가를 지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