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by 박철현 posted May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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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보와 야고보 사도 축일입니다.

선종하신 김차규 신부님, 예전에 함부르크에 계셨던 최태식 필립보 신부님,

그리고 베를린에 계셨던 최태준 필립보 신부님까지

마산교구의 필립보 신부님은 독일과 인연이 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2020년에는 필립보 사도 축일미사를 봉헌하지 않습니다.

부활 제4주일과 겹쳐지기 때문에 주일이 우선입니다.

물론 축일날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축일미사는 봉헌하지 않고

부활 제4주일 미사를 봉헌하게 되는 것이지요.

부활 제4주일은 성소주일이기도 하면서 생명주일이기도 합니다.

성소, 흔히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이날 사제성소와 수도성소를 위해 기도하지만

아울러 결혼성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니까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어울리는 성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참 좋은 일일 텐데

삶이라는 게 그리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사제성소를 받아서 사제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거기에 맞갖도록 노력해야 하고,

수도성소를 받아서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수도회를 창설하신 뜻을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며,

결혼성소를 받아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가정 안에서 기쁜 소식을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 건지 숙고해야 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그 어떤 성소일지라도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결혼을 해서 가정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의 숫자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더 많이 낳고 낳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 자체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인데

그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다는 건 이 세대가 악하기 때문인 걸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성소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까요?

그 해법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써 좀 더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소가 위험한 상황이 된 게 아닐까요?

내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성소라는 건 언제든지 다시 자신의 빛을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야할 길은 멀고 노력은 미진하지만

그래도 성소, 거룩한 부르심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