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의 테마

by 박철현 posted Mar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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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별 다른 일 없이 지나간다는 게

축복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하루만 지나도 달라져 있는 세상의 풍경 속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벌써 두 주일 째 한국의 일상은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하는지 기약도 없습니다.

이런 삶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인다는 것이겠지요.

그에 비해서 여기 유럽은

이제부터 고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은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저 일상의 삶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주시하는 그런 삶이

현명한 방법일 테지요.

역설적이게도 요즘에는 오히려 더 느긋해졌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느긋함이 아니라

뭔가 희망이 보이는 느긋함이라고나 할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너무 여유가 없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여유가 넘쳐도

때로는 느슨해진 끈처럼 스르르 풀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찾지만

실제로는 그런 여유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저의 경우에는 여유가 많은 편인데도

그 여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미 없이 보낼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문득 하늘을 봤더니 둥그런 달 하나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도 오고, 중간중간 파란 하늘도 보였는데

지금은 다시 맑은 밤하늘인 가 봅니다.

달의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는 날은 자주 있는 날은 아닌데

오늘은 그런 행운을 잡은 날인 모양입니다.

간간히 달을 지나쳐가는 구름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뭔가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렇게 뚜렷하게 달을 볼 수 있는 날은

왠지 화살기도라도 하나 쏘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 기원이 하늘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달은 다시 모습을 감춥니다.

아무래도 바람의 흐름이 조금 빠른 모양입니다.

달과 바람의 숨바꼭질, 그게 오늘 밤의 테마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달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달은 더욱 빛납니다.

어쩌면 절망의 어둠이 지금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둠 가운데서도 달처럼 빛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절망 안에 갇혀버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