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단상

by 박철현 posted Jan 17,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루 종일 집안에 머물렀습니다.

이틀 동안 기차를 타고 다녀서 그런지

아무래도 하루는 그냥 쉬자는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도 있었지만 일단은 잠시 놔두기로 했습니다.

매일매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거기에 비하면 정말 자유로운 영혼인 것 같습니다.

성사집행이라는 업무는 있지만

그건 업무가 아니라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 일이 없으면 한껏 여유를 부릴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크게 돈을 버는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갈 정도는 되니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성사를 준비하는 일은 고된 일이 아니니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긴 하려고만 하면 더 없이 바쁘게 지낼 수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열심한 신부는 아닌 가 봅니다.

아무튼 조금은 여유로운 날이었습니다.

벌써 함부르크로 온지도 4년 차에 접어듭니다.

2017년 1월 12일에 함부르크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어떤 때는 열심히 살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적이 훨씬 더 많습니다.

좀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때도 많았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함부르크로 올 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금 좋지 않게 말하면 ‘현상유지’,

그걸 미화시키면 ‘더불어 살기’가 저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상유지는 어느 정도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신자분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해 거름을 뿌리는 일에는

소홀한 점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제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지난번에 이야기를 드린 것처럼

피정이라는 개념 자체에 서로 다른 의견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신자분들 가정을 모두 방문하겠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방문을 원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았던 까닭에

얼마 안 되어 그만 두어야 했고,

어떤 의견은 신자분들이 원하지 않아서 무산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떻게 해도 돌처럼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실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살아가는 동안 비켜갈 수 없는 일들임을 깨닫습니다.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된 지도 이제 첫 달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미미하지만 기지개를 켜는 동작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우선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발걸음은

내디딜 수 있는 모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