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좌성당 미사

by 박철현 posted Jun 2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제 주교좌성당에서는

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와

성체 거동 행렬이 있었습니다.

19시에 미사를 봉헌해서 거의 21시가 다 되어서 끝났으니

3시간이나 걸린 긴 미사였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그런데 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할 때마다 저는 굉장히 분심이 됩니다.

첫 번째는 오르간 반주자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전례를 배울 때,

미사 때 오르간 반주는 꼭 필요한 부분만,

그리고 미사전례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오르간 반주가 너무 깁니다.

성가에 들어가는 부분도 그렇고,

그리고 제대에서는 성찬의 예식을 할 준비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반주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못마땅합니다.

오르간 반주자가 훌륭하게 반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굳이 미사 때 표현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사의 중심은 예수님이시고, 오르간 반주자는 협조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교좌성당의 오르간 반주자는

자신이 마치 미사의 중심인 것처럼 연주를 하니

저에게는 솔직히 그게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는 보편지향기도를 하신 독일 신자분 때문입니다.

이분은 지난번에도 보편지향기도를 할 때,

보편지향기도의 형식에 맞지 않게 하더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시더군요.

보편지향기도 때 람페두사 사고 이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셨던

그 기도문을 낭독하셨는데

보편지향기도의 형식은 간결하고

지향하는 바가 뚜렷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예의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황님께서 하셨던 그 기도문은

다른 기도모임에서는 함께 바칠 수 있는 훌륭한 기도문이기는 하지만

미사 때 바칠 수 있는 기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기도문이라도

언제 어느 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사 때 드리는 보편지향기도는 공동체의 소망을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길게 기도를 한다거나 어떤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미사의 성격을 침해하는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기도문이 미사의 중심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고서 솔직히 저는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사실 이외에도 주교님께서 봉헌한 제물, 즉 빵과 포도주에 분향할 때,

제대를 한 바퀴 다 도는 모습도 전례적으로 틀린 부분이고,

사제가 제대 앞쪽 다시 말해서 신자들에게 등을 보이는 모습 역시

전례적으로 틀린 부분인데 여기 주교좌성당에서는 종종 보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 전례 담당자는

아직 좀 더 배워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함부르크 대교구는 역사가 짧은 만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주교좌성당의 미사가

기쁨과 행복의 자리가 아니라 짜증과 투덜거림의 자리가 되어

미사의 진정한 의미를 덜 맛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함부르크 대교구의 주교도 아니고

주교좌성당 주임신부도 아니라는 사실이 더없이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확실히 저는 다른 부분에서는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은 편인데

미사에 관해서만큼은 좀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미사의 중심에는

늘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주교좌성당 미사는 저에게는 조금 불편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