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리아 전직 현직 간부들과 식사 한 번 하려고 결심했는데
이제야 그걸 실천하게 됩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라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야 시간이 차고 넘치는 편이지만
다른 분들은 참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을 가진 분도 있고,
직장에서는 은퇴를 하셨지만 다른 활동들 때문에 바쁜 분도 있고,
아니면 한국에 갔다 오든지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시는 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기보다는
활동을 함으로써 생기와 신선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을 찾기란
힘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 교구에 여전히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신부님이 한 분 계십니다.
사람들이 왜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냥 쓸 일이 없어서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묻습니다.
"그럼, 불편하지 않으세요?
만약 사람들이 신부님을 찾아 헤매면 어떻게 하지요?"
그럴 때 신부님은 그렇게 대답하시더군요.
"저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굳이 휴대폰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찾아오더군요.
오히려 휴대폰이 없으니 전화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니 그게 더 좋더군요."
저처럼 어느 정도 과학문명의 기술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신부님을 이해한다면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휴대폰이 보급된 이후로
사람들은 휴대폰에 너무 길들어진 나머지
직접 만나서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것에는 어색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서둘러 이루어지는 면도 있습니다.
직접 찾아가야 할 일도 전화 한 통이면 끝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시간적인 여유가 더 생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휴대폰을 이용하면 많은 것이 가능하니까 더 많은 일에 매달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꾸만 휴대폰에 얽매이게 되어
여유를 더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시간을 내어준다는 건
현대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꾸리아 간부는 2월에 바뀌었는데
점심식사를 위해서는 4개월이나 걸린 셈입니다.
물론 제가 늦게 초대한 측면도 있고,
그 사이에 부활이라든지 다른 행사들도 많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측면도 있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은 화기애애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끔씩 느끼는 건데
우리 신자분들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부분은 조금 약한 것 같습니다.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 이야기 중간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끝까지 다 들어보고 나서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저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시는 편이어서 고마움을 느낍니다.
꾸리아 간부님들! 이렇게 초대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