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함부르크에서 공부를 하고 베를린으로 간 청년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면서 저녁미사에 왔습니다.
마침 청년들 레지오도 성목요일 때문에 화요일로 옮긴 터라
레지오 주회를 마친 이후에 함께 간단하게 송별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유학생의 경우에는
실제적으로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거나,
아니면 공부한 곳에서 일터를 구하게 되는 길.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그라츠에도 국립음대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 중 신자들인 학생들에게는 늘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한국에서 일터를 구하겠다고 생각하면
방학 때면 늘 한국으로 가서
교수님이나 선배님들 부지런히 만나야 하고,
정말 공부의 한 길로 정진하겠다고 생각하면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맥이나 사람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인 일에 휘말리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만
일이 순조롭게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은
아무래도 여기서 일터를 구하는 게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신부라는 소명은 그런 일에서 좀 자유롭다는 장점은 분명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굳이 살피지 않고
하느님의 뜻만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하면 되니까요.
예전에 신부님들 중에는
좀 더 큰 성당으로 가기 위해 주교님께 아부 아닌 아부를 하신 분들도
드물지만 분명 있었습니다.
왜 그런 신부님들이 있었느냐 하면
그 때는 미사예물이 공유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미사예물 자체가
신부님들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큰 성당으로 가면 좀 더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드물지만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래서 주교님께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신부님들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미사예물을 모두 보고하고
그 중에 정해져 있는 부분만 받게 되니까요.
물론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저는 예외입니다.
그래서 미사예물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청년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노력하는 편입니다.
아무튼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건
저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자분들의 의견보다는
조금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도 있지만
그걸 이해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저는 그런 점에서 정말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