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이 무뎌지면

by 박철현 posted Jan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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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송별회 때문에 늦게 잠이 든 탓인지

오늘은 주교좌성당의 종소리가 저를 깨웠습니다.

 

평일에는 12시가 되어야 종이 울리는데

주일에는 10시에도 종이 울리기 때문에

그 때 즈음이면 일어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있을 때도

종소리는 요란했습니다.

 

거기 신학교도

주교좌성당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주교좌성당에서 종이 울릴 때면

방 안에 누워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15분이면 한 번, 30분이면 두 번,

45분이면 세 번,

정각이 되면 네 번의 종소리와

그 시간에 맞는 종소리가

참 요란하게도 울려퍼졌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처음에는 그렇게 요란했던 종소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한 2년이나 3년까지는

종소리를 인식할 수 있었는데

4년 차 부터는 문득문득 아직도 종을 치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평소에는 그 종소리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확실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봅니다.

적응이 되었다고 그토록 요란하던 종소리마저

듣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신경이 무뎌지면

그 만큼 좋은 일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세심하게 다가서지 못한다는

단점을 동반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종소리 하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면

그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종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때그때 기도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저 잊어버렸을 뿐이라는 그 사실이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도 합니다.

 

종소리가 잊혀졌던 것처럼

삶에서도 많은 부분들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잊어버릴까 그것이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