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부님을 배웅하고 나서...

by 박철현 posted Jan 23,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전임신부님이신 최신부님을 배웅하고 난지 3일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혼밥(혼자 먹는 밥)을 먹으면서
혼자 지내는 일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떠 도는 외로운 섬이라고 누군가 시에서 읊은 것처럼
어느 한 곳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제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여기 유럽에서는
보통 신부님께서 한 본당의 소임을 맡으시면 종신으로 계시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성당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도 3년에서 5년 동안 소임을 맡고 나면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제들의 삶입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적어도 소임을 맡은 곳에서 만큼은 최선을 다하며 살자고 다짐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보다 머무는 것이 훨씬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이라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향기가 공동체에 은은하게 번져 있는 상황에서는 
지금 당장은 새로운 만남의 기쁨보다 이별의 아련함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틈을 채워 가는 일이 바로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겠지요.
사제로 살면서 제가 살고 있는 그 곳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 때문에 여행이라든가 하는 일에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방콕(?)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함께 있어도 외롭다면 그 외로움을 친구로 삼을 것입니다.
하긴 공동체가 있고, 그 공동체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외로움을 이야기한다면
그것 만큼 잘못된 표현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는 외로움은 외적인 외로움이 아니라 내적인 외로움입니다.
수많은 은수자들이 열망했던 바로 그 외로움입니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오후입니다.